마약 전과 3범, 또 걸려도 집유…'마약과의 전쟁' 힘 못 받는 이유

김지은 기자, 강주헌 기자, 심재현 기자 2023. 4.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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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10대로 번진 마약, 중독의 덫(下)
"마약에 절어 운전해온 사람도"…전문가가 본 중독사회 현주소
-"이제라도 체계적 통제 시스템 구축해야" 한목소리
유튜버 '동네지킴이'는 지난해 10월23일 '갑자기 경찰차에 태우는데..ㄷㄷ'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사진=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동영상 캡처


"익명 채팅 앱을 보면 만나서 함께 마약을 하자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내면 마약에 취한 채로 운전을 하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마약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거죠."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를 운영하는 A씨는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익명 채팅 앱에서 마약류 사범으로 의심되는 인물과 만나자고 약속한 뒤 경찰에 신고해 검거되는 과정을 콘텐츠로 만드는 유튜버다.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이런 방식으로 300명이 넘는 마약류 사범을 경찰에 넘겼다.

A씨는 "마약 제보가 하루에 1∼2건씩 꾸준히 들어온다"며 "1주일에 15명 정도, 한 달로 치면 60명쯤 마약류 사범을 잡는데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마약류 범죄는 경찰이 함정 수사를 하는 데 제약이 있고 증거를 잡기도 어려워 실제보다 드러나지 않을 뿐 이미 일상을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얘기다.

대다수 마약 관련 전문가도 A씨의 이 같은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전문가들은 마약류 범죄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산하기 전에 체계적인 마약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총 1만8395명으로 2021년 1만6153명보다 13.9% 늘었다. 이 가운데 마약류 유통사범은 4890명으로 전년 4045명보다 20.9% 늘었고 밀수사범은 1392명으로 전년 807명보다 72.5% 증가했다.

20대 마약류 사범이 5804명(31.6%), 30대가 4703명(25.6%)으로 2030세대가 전체 마약류 사범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10대 마약류 사범이다. 15∼19세 마약류 사범이 440명으로 2.4%, 15세 미만 마약류 사범도 41명이나 된다.

임상현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장은 "처음 시설을 시작했을 때는 30~40대가 많았는데 최근 1~2년 사이 젊은 세대가 부쩍 늘었다"며 "젊은 층은 대부분 부모님에게 거짓말해 용돈을 받거나 대출,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약을 구매할 돈을 마련하는데 여의치 않을 경우 돈을 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최진묵 인천다르크 마약류중독재활센터장은 "지금이라도 마약 범죄를 끊어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실장에 따르면 국내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는 4곳으로 총 수용인원이 30명에 그친다. 10대 청소년의 경우 입소할 수 있는 센터가 사실상 전무하다. 최 센터장은 "미성년자는 성인과 함께 관리하기 어려워 센터 입소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윤홍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는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수사기관이 공조해 마약류 관련 범죄를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며 "모두가 합동해 마약 확산을 막아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초범이시네요, 집행유예"…'솜방망이' 처벌, 마약범죄 키운다
-타인 투약 가중처벌 어려워…입법 논의 필요

최근 마약류 관련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 가벼운 처벌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초범의 경우 대체로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그치는 데다 동종 전과가 있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처벌 규정이 강화된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7일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 통계를 보면 2021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총 5468건의 1심 판결이 있었다. 이 중 실형 선고는 2624건(48.1%)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실형 선고 비율은 2019년 53.7%, 2020년 50.6%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반대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비율은 2019년 36.3%, 2020년 38.1%, 2021년 39.8%로 증가했다.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유명 작곡가 돈스파이크(본명 김민수·46)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과거 대마초 등 마약 전과 3회가 있던 그는 2021년 말부터 필로폰을 4500만원어치 사고 14차례 투약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검찰도 지난 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돈스파이크에 대한 첫 항소심 공판에서 양형이 가볍다는 점을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반복적으로 범행했고 3000회 이상 투약할 수 있는 양의 필로폰을 매수했으며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연예인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집행유예는 과경하다"고 밝혔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마약류 범죄는 전과가 없으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돈스파이크 사건의 경우는 마약 전과가 있는데도 비교적 낮은 형량을 선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양형 기준 자체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 형량을 보면 투약과 단순소지는 징역 6개월, 매매·알선이 8개월, 수출입과 제조는 징역 10개월부터 시작된다. 김영란 양형위원장은 "마약류 범죄 양형기준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양형기준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타인 투약에 대한 가중처벌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마약류 자가 복용·유통·거래·소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기 스스로 마약류를 투약하는 행위와 타인에게 강제로 마약류를 투약하는 행위를 다르게 처벌할 규정이 없다.

이와 관련, 한 국회 관계자는 "마약류 범죄가 연령을 막론하고 발생하고 타인에게 투약하는 신종 유형이 나타나는 등 다양화되고 있다"며 "처벌 강화를 위한 법적 기준 등이 입법·정책적으로 검토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왜 강남·학생·밤시간을 노렸나…'강남 마약음료' 범죄의 진화

서울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청소년에게 마약 음료를 건넨 혐의를 받는 이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제공=강남경찰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와 학교 앞에서 초중고생들에게 마약음료를 시음하게 한 뒤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 돈을 뜯어내려 한 사건을 두고 보이스피싱 등 기존 강력범죄가 마약과 결합해 신종범죄로 진화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약이 소수집단에서 은밀하게 유통·소비되던 단독범죄에서 다른 범죄의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마약음료 사건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 등을 사칭해 협박하거나 개인정보를 빼내던 방식에 비해 피싱 수법이 더 악질적이고 지능적으로 바뀌었다. 자녀를 악용하는 방법도 그동안의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주로 자녀인 척 문자를 보내 계좌이체를 유도했던 것과 달리 자녀에게 직접 마약을 먹이고 경찰에 투약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대담한 수법으로 악랄해졌다.

부유층이 많은 강남 지역에서도 자녀의 학구열이 높은 대치동을 타깃으로 학원생이 많은 오후 6~10시에 범행했다는 점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은 음료를 나눠준 '행동책'과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를 협박한 '중간관리책', 이를 계획하고 지시한 '총책' 등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이 저지른 범죄라고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이 지난 8일 긴급 체포한 공범 A씨도 중국 소재 총책으로부터 범행을 지시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에서는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마약을 이용한 제2, 제3의 신종범죄가 이어질 가능성을 두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이용하던 아르바이트생 대신 마약으로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을 쓴다든가 마약을 미끼로 다른 강력범죄를 사주하는 경우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범죄가 늘어날 경우 마약 이권을 두고 범죄조직간 강력범죄를 벌이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약범죄가 진화하는 배경으로 국내에서도 누구든 싸고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꼽는다. 국내 암거래 시장에서 필로폰의 1회 투약분(0.03g) 가격은 최근 2만원 수준으로 내려온 것으로 파악된다. 치킨이나 피자 값으로 마약을 사 범죄에 이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아주대 약학대학 교수)은 "다른 사람에게 마약을 투약하는 행위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이 마땅찮은 게 문제"라며 "강화된 법안을 입법하는 것이 마약 관련 사범과 마약 관련 신종범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독 치료받고 싶어도 갈 곳이 없어"…마약 예방·관리 구멍


마약범죄에서 전문가들이 단속과 처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예방교육과 치료보호다. 특히 최근 심상치 않은 증가세를 보이는 10대 청소년의 마약범죄에서는 예방교육이, 마약류 관련 사범 전반의 재범률 감소를 위해선 치료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국내에서 예방교육과 치료보호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보호의 경우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 21곳 가운데 현재 실질적으로 중독자 치료를 감당하고 있는 곳이 인천참사랑병원 1곳에 그친다. 나머지 병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그나마 인천참사랑병원에서도 10대 청소년 중독자는 받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마약과의 전쟁'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장에서는 의무부대 태반이 전투 불능 상태인 셈이다.

마약을 투약했다가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이들 대부분이 치료보호 처분 없이 사회로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2016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1심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마약사범 9892명 가운데 치료명령이 내려진 이들은 156명에 그쳤다. 한번 손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끊기 힘든 마약중독을 홀로 견디기 쉬울 리 없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범죄 재범률은 37%에 달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법원과 법무부, 보건복지부가 협력체계를 구축해 마약사범이 온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의무치료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병원장은 "미국에는 약물법원이 따로 있어서 사법적으로 중독자에게 체계적으로 치료와 재활 명령을 강제하고 감시한다"며 "한국도 이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해국 의정부 성모병원 교수는 "교육부도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약에 대한 인식 수준 등을 조사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중장기적인 예방교육체계를 세워야 한다"며 "급하다고 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서투른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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