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기후 대응 남은 시간, 10년뿐"…'조삼모사', 'NIMT'로 빛바랜 많은 이들의 노력 (하)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과 지구의 기온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종합해 그 관계를 명확히 했고, 그 결과 '기후변화 방정식'을 찾아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와야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보다 1.5℃ 높아지는지 말이죠. 그 답은 약 3,000Gt입니다. 우리가 뿜어낸 이산화탄소의 양이 이를 넘으면, 1.5℃ 저지선은 깨지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2,500Gt 가량을 뿜어냈습니다. '1.5℃ 목표 사수'를 위한 인류의 '이산화탄소 통장'에 남은 잔고는 500Gt(5천억톤) 뿐인 겁니다. “2030년까지 몇%를 줄이겠다”,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외침보다 '2030년까지 누적 총배출량', '2050년까지 누적 총배출량'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살펴보고 있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6차 평가보고서와 그 직후 공개된 새 정부의 첫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및 전략. 마지막 순서로 '우리에게 남은 탄소예산'과 '우리나라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및 전략'의 괴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근데 재밌게도 말이죠, 제가 만나본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2050년 넷 제로를 선언했다”는 이야기만 먼저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봐 보면, 배출은 계속 늘고 있어요. 그건 아니거든요. 저는, 그 넷 제로를 하기 위해서 “내년서부터 우리는 7%씩 감축에 나섭니다”라는 말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회성 IPCC 의장
IPCC를 통해 전 세계 195개국의 과학자와 정부 관계자가 '만장일치'로 2050년 탄소중립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뿜어낼 수 있는 탄소 예산, 앞서 표현한 '이산화탄소 통장'의 잔고는 500Gt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x축은 연도, y축은 연간 순배출량으로 하는 그래프를 그려보니 2050년, 순배출량이 '제로'가 되어야 간신히 그 그래프의 면적을 500Gt에 맞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면적은 이미 정해져있기에, 우리가 감축을 미룰수록 그 그래프의 기울기가 커질 수밖에 없고요. 이회성 IPCC 의장이 '지금부터 연간 7%씩 감축'을 강조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감축 계획은 과연 이러한 탄소 예산의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기 위해, 각 부문별로 그 책임을 나눠 갖게 됩니다. 이전 정부와 새 정부의 주요 배출 부문별 목표 중 차이를 보인 것은, 산업과 전환 부문입니다. 당초 14.5%였던 산업부문의 감축 목표는 11.4%로 낮아졌습니다. 대신 전환 부문의 감축 목표는 44.4%에서 45.9%로 높아졌고요. 수송과 건물, 농축수산과 폐기물 등의 분야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목표가 처음 제시됐던 당시, 산업계는 14.5%라는 감축 목표가 그저 높은 것을 넘어 '실현할 수 없다'고 반발한 바 있습니다. 결국, 산업계의 감축 부담은 이번 계획을 통해 줄어들게 됐죠. 하지만 국가 단위감축 목표가 변한 것이 아니기에 산업계로부터 덜어낸 '감축의 몫'은 누군가가 대신 짊어져야 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전환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산업, 수송, 건물 등과 달리 전환(발전)의 경우, 감축 주체 대부분이 발전 공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목표의 '기준연도'인 2018년 기준, 전환과 산업이 국가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그 부담을 그 외 다른 부문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도 했겠지만요.
그래프를 그려놓고 보니, 기울기에 뭔가 특이점이 보입니다. '40% 감축'이라는 야심찬 목표와 달리, 목표 초반 순배출량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겁니다.
앞서 IPCC가 강조한 '탄소 예산'과 '꾸준한 감축'의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양을 '더 뿜어내는가' 살펴봤습니다. 이미 2분기에 접어든 2023년은 어쩔 수 없다 치고, 2024년부터 2030년 배출 목표치인 4억 3,660만톤까지 선형적으로 줄여나가는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는 둥 마는 둥'의 감축이 일어나는 시간은 현 정부의 임기 동안입니다. 실질적인 감축의 부담은 미래로, 차기 정부로 넘어간 겁니다. 여기서도 NIMT(Not In My Term, 내 임기 동안은 안 된다)는 여실히 드러납니다. 배출 총량의 관점에서, 2027년까지 이렇게 감축을 안 할 거라면, 우리는 2030년, '2018년 대비 40% 감축'이 아닌, 더 많은 양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계 각국이 2030 NDC 성적표를 들고나와 서로의 이행을 점검할 때에도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겁니다. 지구 단위의 '이산화탄소 통장'에서 잔고를 탈탈 털어 썼다는 이유로 말이죠.
산업 부문이 줄였어야 하는 몫은 결국, '미지의 카드'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CCUS(탄소포집, 사용 및 저장)과 국외감축이라는, 아직 실현 여부조차 불투명한 분야로 말이죠. 당초 1,030만톤 가량으로 잡혀있던 CCUS의 흡수·제거량은 1,120만톤으로 약 90만톤 늘었고, 3,350만톤이었던 국외감축량은 3,750만톤으로 4백만톤 가량 늘었습니다.
탄소포집의 경우,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상용화와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석유와 가스를 뽑아 쓰던 나라들의 경우, 그렇게 뽑아낸 자리에 다시 이산화탄소를 집어넣어 땅속 혹은 바닷속 깊숙이 묶어두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이 화석연료를 수입해서 썼던 만큼, 그럴 곳이 없습니다. '이산화탄소 통장'에서 얼마 없는 잔고를 탈탈 털어 쓰고는, 이를 저장하기 위한 '월셋집'을 찾아나서야 하는 겁니다.
현재, 그 월세를 누가 낼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감축 부담을 줄여준 산업 부문이, 다시 말해, 기존 목표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뿜어낸 개별 기업이 그 부담을 100% 부담할지, 혹은 이들이 더 뿜어낸 이산화탄소를 포집, 저장해 해외의 저장고로 운송하고, 이를 저장시키는 과정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될지. 산업 부문의 감축 부담을 줄여준 것은 그저 '산업계의 편의를 봐주는 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NIMT는 그저 배출량과 감축량에서만, 혹은 2030년까지에 대해서만 엿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전환 부문의 경우, 이번 탄녹위의 계획, 그리고 이보다 앞서 발표됐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서도 노골적인 NIMT가 드러납니다. 한 번 지어지면 최소 30년은 사용하는 것이 발전 설비인데, 그런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전환 부문에 있어 2050년 이후의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탄녹위의 계획과 10차 전기본을 통해 드러난 정부의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원전의 기저발전화입니다. 이를 위해선 대규모 원전 신규 건설이 필수적입니다. 2030년대까지야 지금 건설 중이거나 건설이 예정된 원전만으로도 '원전 비중 30%대'를 달성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50년, 원전의 발전비중이 최소 30%가 되려면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현재 가동 중인 25기 원전과 계획 중인 원전 5기 외에도 추가로 14기의 원전이 더 필요합니다. 원전 1기당 건설비용만도 5조원이 들고, 입지 선정 과정부터 준공 후 실제 운영까진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신규 원전의 건설뿐 아니라 기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영구 처분장 건설조차 뚜렷한 윤곽이 나온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전의 기저발전화'의 의지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한 장기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이 또한, 다른 의미에서의 NIMT(Not In My Term, 내 임기 내의 일이 아니니까)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다른 나라의 연구 결과야'라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일이 아닙니다. 이 내용을 만장일치로 합의한 195개국 가운데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IPCC를 이끄는 수장 또한 한국인이고요. 지고지난한 합의에 나섰던 우리 대표단의 노력은 이렇게 국내에서 잊혀지고 마는 것일까요.
이전 정부의 2030 NDC와 탄소중립 계획에 대해 “선언만 있을 뿐, 실제로 한 일은 없다”며 날선 비판을 했던 이번 정부입니다. 하지만 탄소중립·녹색성장 계획의 면면을 봤을 때,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보이는 NIMT는 '이전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2030년 그 해의 목표와 2050년 그 해의 목표만 간신히 달성하는 계획은 결국 시민 개개인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 부문의 줄어든 감축 부담은 다른 부문의 감축 부담 증가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EU의 CBAM(탄소국경조정),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후공시 의무화, 글로벌 산업계의 RE100 동참이라는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거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이처럼 변화에 대응하지 못 한다면, 이는 우리 산업계의 경쟁력 악화로, 해외 경쟁 기업의 '절호의 기회'로 이어질 겁니다.
'국제 공인'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의 국가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IPCC의 이번 6차 평가보고서 발표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감축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2050년이 아닌 2040년 탄소중립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는 비단 UN사무총장 한 사람의 개인적 의견이 아닙니다.
이번 6차 평가보고서 공식 기자회견에서 유엔 사무총장은 '선진국들은 2040년까지 넷 제로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엔 좀 늦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를 줄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회성 IPCC 의장
기후위기 대응은, 이를 위한 탄소중립 이행은, 그 과정에서의 에너지전환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비단, 폭우와 가뭄과 같은 기후재난 속, 시민 개개인의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에너지 안보, 산업계의 수출 경쟁력, 국가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등 '모두'엔 기업과 산업계, 국가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탄소중립이라는 어젠다가 환경단체를 넘어 세계 각국과 유수의 글로벌 기업의 '공통 목표'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이러한 변화에 취약하고, 그렇기에 예민해야 하며, 더 신속하게 대응해야 할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고요.
IPCC의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마련 과정에서도, 곳곳에서 고군분투, 헌신한 한국인이 여럿이었습니다. 부디 이들의 땀과, 노력, 수면부족과 스트레스가 제 빛을 찾기를, 맹목적인 NIMT와 조삼모사로 인해 헛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주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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