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길 | 그리스로마신화 쫓다 ‘꿈까지 꾼’ 담백한 국물[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4)
2023. 4. 10. 07:41
서울 여의도 ‘화목 순대국’
2000년부터 4년 동안 가정사와 아이들 유학 관계로, 영국에서 아들·딸 두 녀석과 지낸 적이 있다. 맨 처음에는 럭비라는 스포츠가 탄생한 지역 이름인 럭비(Rugby)라는 곳에서 지냈다. 영국에 있으면서도 집에선 주로 한국 음식을 해먹고, 밖에서는 정말 맛이 형편없는 영국 음식을 먹어야 했다.
지금이야 영국에도 한류의 영향으로 ‘K푸드’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런던의 한인촌인 뉴몰든을 가더라도 없는 메뉴가 너무 많았다. 영국에 있으면서 항상 그리운 음식이 있었다. 우리나라 어느 음식점도 흉내를 낼 수 없는, 가끔 생각만 해도 미치도록 입에서 군침이 도는 음식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무조건 차를 몰고 달려가 먹은 음식이기도 했다.
나는 얼마 전에 14년 동안 준비한 <강남길의 명화와 함께 후루룩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세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전체 내용은 물론, 영국부터 튀르키예까지 세 번에 걸쳐 촬영한 수만 장 중에서 선별한 약 1500장의 사진을 통해 명화와 조각을 선명한 화질로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그 내용에 맞는 명화와 조각을 선명한 사진으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책에 실을 사진과 유튜브에 필요한 동영상을 찍기 위해 영국부터 시작해 마드리드, 파리, 독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까지 샅샅이 훑었다. 한번 가면 최소한 2~3개월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빡빡한 일정 탓에 도중에 일부러 한국 식당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주로 그 나라 음식을 먹고, 점심에는 간단히 바게트나 빵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니거나 버티면 그만이다. 다행히 꼭 매끼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몇 개월의 외국 여행도 거뜬히 해낸다. 굳이 김치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고비는 외국 음식에 물릴 때쯤 찾아온다.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해 박물관과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니 한국 음식이 더 그리웠던 걸까. 꿈속에까지 나타났다. 그걸 먹기 위해 인천공항에 내리면, 다음 날 신나게 차를 몰고 달려가곤 했다. 그 집이 바로 여의도 KBS 별관 옆의 경도상가 1층에 있는 ‘화목순대국’이다.
그래 봤자 순댓국이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집이길래 이리도 유난을 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 처음으로 이 집을 직접 방문한다면 규모와 실내 분위기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래된 맛집이 그렇듯, 이 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맛을 자랑한다. 순댓국을 싫어한 나를 비롯해 우리 아들과 딸한테까지 순댓국의 참맛을 알려준 집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순댓국을 싫어했다.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 모래내시장인가 어딘가에서 처음으로 순댓국을 먹었다. 그때 맡은 순댓국의 역한 냄새 때문에, 이후 순댓국집이라면 움칫 피할 정도로 순댓국을 멀리했다.
그랬던 내가 바로 이 집 때문에 순댓국에 빠져들고 말았다. 달리 표현하자면 순댓국의 참맛에 빠져버렸다. 30대 초반의 어느 날, 이 집을 처음 알게 됐다. 추운 겨울이었다. KBS 여의도 별관 주변에서 야외촬영을 할 때였다. 같이 촬영하던 선배님이 따끈한 순댓국 한 그릇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오잉? 순댓국?’ 지금이야 후배들이 당시의 눈높이로 보면 선배 말을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선배님은 곧 하늘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말씀에 어디 감히 토를 달고, 싫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시켜놓고 안 먹으면 되지, 뭐!’ 하는 당돌한 마음으로 선배님을 따라 ‘화목순대국’에 들어갔다. 한 8평 남짓한 식당 안에 10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희한하게 주방은 식당 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3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주방 턱이 낮아 항상 머리를 조심하고 앉아야 했다.
선배님이 내장탕을 주문했다. 나는 순댓국을 시켰다. 반찬으로 깍두기와 고추 및 된장이 나왔다. 그러더니 붕 떠 있는 주방에서 순식간에 순댓국과 내장탕이 숟가락이 꽂힌 채 나왔다. 나올 때부터 고추기름이 동동 떠 있었다. 간을 맞춰 나온다는 말이다. 이 집의 특징이었다. 입맛에 따라 새우젓으로 간을 추가하는 손님들도 물론 있었다.
숟가락으로 안의 순대와 내장을 한참 휘휘 돌리다가, 밥과 국물을 떠먹어 보았다. 벌써 무의식 속에선 어릴 적의 역한 그 순댓국 맛이 소환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이상한 냄새도 안 나고 너무 맛있었다. 오잉? 순대와 내장까지 모두 먹어 치워버렸다. 이때부터 순댓국의 참맛에 빠져, 이 집은 지금까지 나의 단골 맛집이 돼버렸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집은 변한 게 거의 없다. 밑반찬과 메뉴도 마찬가지다. 식사로는 순댓국, 내장탕, 순대탕이 나오고 안주로는 순대와 내장이 주류를 이룬다. 저녁에는 소주 한 잔 곁들이는 분이 많다.
KBS 별관에서 일일 연속극이나 주말 연속극을 녹화할 때면, 길어지는 바람에 저녁까지 먹어야 할 때가 왕왕 있다. 그럴 때 대개 나의 점심 메뉴는 순댓국이고, 저녁 메뉴는 내장탕이다. 별관에 녹화하러 오는 연예인들도 이 집을 자주 찾는다. 그래서 심심찮게 연예인을 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의 증권가 셀러리맨을 비롯해 많은 단골 손님들로 점심과 저녁때면 항상 분주하다.
한번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집만의 담백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순댓국의 참맛을 말이다.
강남길 배우
맛집 정보가 넘쳐나는데 믿고 갈 만한 식당은 찾기 어렵습니다. 낯선 지역이나 여행길에선 더 그렇지요. 그 지역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서라도 갈 텐데요. 열심히 검색을 해보지만 좀처럼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신뢰할 만한 맛집을 건져보기로 했습니다. 주간경향이 각계각층의 명사를 찾아 이름을 걸고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는 ‘인생 맛집’ 공개, 지금 시작합니다.
2000년부터 4년 동안 가정사와 아이들 유학 관계로, 영국에서 아들·딸 두 녀석과 지낸 적이 있다. 맨 처음에는 럭비라는 스포츠가 탄생한 지역 이름인 럭비(Rugby)라는 곳에서 지냈다. 영국에 있으면서도 집에선 주로 한국 음식을 해먹고, 밖에서는 정말 맛이 형편없는 영국 음식을 먹어야 했다.
지금이야 영국에도 한류의 영향으로 ‘K푸드’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런던의 한인촌인 뉴몰든을 가더라도 없는 메뉴가 너무 많았다. 영국에 있으면서 항상 그리운 음식이 있었다. 우리나라 어느 음식점도 흉내를 낼 수 없는, 가끔 생각만 해도 미치도록 입에서 군침이 도는 음식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무조건 차를 몰고 달려가 먹은 음식이기도 했다.
나는 얼마 전에 14년 동안 준비한 <강남길의 명화와 함께 후루룩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세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전체 내용은 물론, 영국부터 튀르키예까지 세 번에 걸쳐 촬영한 수만 장 중에서 선별한 약 1500장의 사진을 통해 명화와 조각을 선명한 화질로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그 내용에 맞는 명화와 조각을 선명한 사진으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책에 실을 사진과 유튜브에 필요한 동영상을 찍기 위해 영국부터 시작해 마드리드, 파리, 독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까지 샅샅이 훑었다. 한번 가면 최소한 2~3개월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빡빡한 일정 탓에 도중에 일부러 한국 식당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주로 그 나라 음식을 먹고, 점심에는 간단히 바게트나 빵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니거나 버티면 그만이다. 다행히 꼭 매끼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몇 개월의 외국 여행도 거뜬히 해낸다. 굳이 김치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고비는 외국 음식에 물릴 때쯤 찾아온다.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해 박물관과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니 한국 음식이 더 그리웠던 걸까. 꿈속에까지 나타났다. 그걸 먹기 위해 인천공항에 내리면, 다음 날 신나게 차를 몰고 달려가곤 했다. 그 집이 바로 여의도 KBS 별관 옆의 경도상가 1층에 있는 ‘화목순대국’이다.
그래 봤자 순댓국이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집이길래 이리도 유난을 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 처음으로 이 집을 직접 방문한다면 규모와 실내 분위기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래된 맛집이 그렇듯, 이 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맛을 자랑한다. 순댓국을 싫어한 나를 비롯해 우리 아들과 딸한테까지 순댓국의 참맛을 알려준 집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순댓국을 싫어했다.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 모래내시장인가 어딘가에서 처음으로 순댓국을 먹었다. 그때 맡은 순댓국의 역한 냄새 때문에, 이후 순댓국집이라면 움칫 피할 정도로 순댓국을 멀리했다.
그랬던 내가 바로 이 집 때문에 순댓국에 빠져들고 말았다. 달리 표현하자면 순댓국의 참맛에 빠져버렸다. 30대 초반의 어느 날, 이 집을 처음 알게 됐다. 추운 겨울이었다. KBS 여의도 별관 주변에서 야외촬영을 할 때였다. 같이 촬영하던 선배님이 따끈한 순댓국 한 그릇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오잉? 순댓국?’ 지금이야 후배들이 당시의 눈높이로 보면 선배 말을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선배님은 곧 하늘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말씀에 어디 감히 토를 달고, 싫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시켜놓고 안 먹으면 되지, 뭐!’ 하는 당돌한 마음으로 선배님을 따라 ‘화목순대국’에 들어갔다. 한 8평 남짓한 식당 안에 10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희한하게 주방은 식당 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3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주방 턱이 낮아 항상 머리를 조심하고 앉아야 했다.
선배님이 내장탕을 주문했다. 나는 순댓국을 시켰다. 반찬으로 깍두기와 고추 및 된장이 나왔다. 그러더니 붕 떠 있는 주방에서 순식간에 순댓국과 내장탕이 숟가락이 꽂힌 채 나왔다. 나올 때부터 고추기름이 동동 떠 있었다. 간을 맞춰 나온다는 말이다. 이 집의 특징이었다. 입맛에 따라 새우젓으로 간을 추가하는 손님들도 물론 있었다.
숟가락으로 안의 순대와 내장을 한참 휘휘 돌리다가, 밥과 국물을 떠먹어 보았다. 벌써 무의식 속에선 어릴 적의 역한 그 순댓국 맛이 소환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이상한 냄새도 안 나고 너무 맛있었다. 오잉? 순대와 내장까지 모두 먹어 치워버렸다. 이때부터 순댓국의 참맛에 빠져, 이 집은 지금까지 나의 단골 맛집이 돼버렸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집은 변한 게 거의 없다. 밑반찬과 메뉴도 마찬가지다. 식사로는 순댓국, 내장탕, 순대탕이 나오고 안주로는 순대와 내장이 주류를 이룬다. 저녁에는 소주 한 잔 곁들이는 분이 많다.
KBS 별관에서 일일 연속극이나 주말 연속극을 녹화할 때면, 길어지는 바람에 저녁까지 먹어야 할 때가 왕왕 있다. 그럴 때 대개 나의 점심 메뉴는 순댓국이고, 저녁 메뉴는 내장탕이다. 별관에 녹화하러 오는 연예인들도 이 집을 자주 찾는다. 그래서 심심찮게 연예인을 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의 증권가 셀러리맨을 비롯해 많은 단골 손님들로 점심과 저녁때면 항상 분주하다.
한번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집만의 담백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순댓국의 참맛을 말이다.
필자는 MBC 일요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윤봉수’ 역으로 대중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소시민의 삶을 맛깔나게 연기해 ‘국민배우’ 소리를 들었다. 그가 쓴 <TV보다 쉬운 컴퓨터>, <TV보다 쉬운 인터넷> 등 저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방송가에서도, 서점가에서도 소식이 뜸하다 싶더니 최근 무려 14년간 공을 들인 <강남길의 명화와 함께 후루룩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전 3권)를 내고 독자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강남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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