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과 베이조스의 ‘드론왕국’은 왜 만신창이가 됐나 [박건형의 홀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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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SF) 영화 속 미래의 지구에서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동수단도 하늘을 날고, 집도 하늘에 지어집니다. 하늘을 뚫은 초고층 빌딩에 비행 자동차가 곧바로 주차하는 식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상상입니다. 지상의 공간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새로운 길과 공간은 하늘에서 찾아야 하겠죠.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많은 기업들이 이런 미래에 도전했습니다. 1~2인승 비행기로 택시를 대체하겠다는 ‘플라잉택시’에 뛰어든 업체들이 대표적입니다. 세계 최대 차량 공유업체 우버를 비롯해 현대차 같은 완성차 업체들도 플라잉택시가 모빌리티의 미래라며 앞다퉈 사업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물류·택배 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드론(무인기)은 한때 모빌리티의 새로운 장을 열 킬러 콘텐츠로 각광받았습니다. 전장(戰場)에서는 이미 드론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전략 무기가 됐습니다. 빅테크와 전세계 스타트업들은 드론 사업에 뛰어들면서 이를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드론이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왜 민간 드론 물류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걸까요.
최근 외신들은 드론에 대한 기대가 왜 과도했는지, 야심 찬 미래 사업이었던 드론 프로젝트가 왜 망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도심에서 사람의 머리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드론은 아직 기술이 완벽하지 않고, 하늘 길을 열기 위한 규제는 기술력보다도 더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죠.
◇코미디 같은 아마존 드론 배송
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의 기자들은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 록퍼드에 있는 한 주택에서 아마존의 드론이 물건을 배송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연방항공국(FAA)과 아마존 엔지니어, 홍보담당 직원, 아마존의 드론 회사인 프라임 에어의 수석 조종사 짐 멀린을 포함해 현장에는 4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와이어드는 이날 행사가 거의 코미디였다고 전합니다. 프로펠러 6개에 몸통이 탄소 섬유로 제작된 80파운드 무게의 ‘MK27-2′ 드론은 이륙하기 전부터 소프트웨어 문제로 부팅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른 드론에 카드 게임을 넣어 이륙시켰습니다. 문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잔디 깎는 기계처럼 큰 소리로 날아가던 드론은 목적지인 주택의 뒷마당에 도달하기 전에 이륙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점검해 보니 드론이 배송 지점을 확인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뒷마당에 설치해 놓은 QR코드 마커가 원래 위치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와이어드는 “실패한 배송을 본 FAA 관계자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마존 간부들은 화를 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드론 사업과 관련된 규제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상황이었습니다. QR코드가 제 자리에 있지 않은 것 같은 돌발적인 상황에서 드론이 무리한 배달을 강행하는 대신 포기하는 ‘안전’을 우선시한 것이 FAA 관계자들을 만족하게 한 것입니다.
◇10년째 완성되지 않은 꿈
이날 아마존의 드론이 카드 게임 하나를 완벽하게 배송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아마존 기술진은 QR코드 마커를 제 자리에 설치하고, 드론이 목적지를 정확하게 찾도록 하기 위해 GPS(위성항법시스템)를 동기화했습니다. 드론 배송의 목적이 멀리 떨어진 곳에 신속하게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히 실패한 실험인 셈입니다. 실제로 현장에 있던 아마존 직원은 와이어드에 “정말 실망스러웠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면서 “우리는 거의 매일 실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가 드론을 처음 거론한 것은 2013년 11월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CBS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 출연해 “아마존 제품의 85%를 차지하는 5파운드(약 2.27kg) 미만의 상품 패키지를 4~5년 이내에 드론으로 고객에게 배송하겠다”고 했습니다. 베이조스와 아마존의 목표는 느리고 천천히 진행됐습니다. 아마존은 꾸준히 드론을 개발했고 지난해에는 베이조스가 당초 말했던 목표와 일치하는 ‘MK27-2′를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드론은 신발 상자 크기에 5파운드 미만의 패키지를 운반할 수 있고, 왕복 12km까지 비행이 가능합니다.
◇복잡한 절차와 번거로움
아마존은 드론 배송을 시험하기 위해 미국 내에 두 곳의 테스트베드를 만들었습니다. 록퍼드 역시 그 중 하나 입니다. 이곳은 전반적으로 평평한 지형에 공항이 인근에 있고, 날씨가 건조해 드론이 기후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한 곳은 텍사스 칼리지스테이션으로 인근에 드론과 항공에 특화된 텍사스A&M 대학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테스트베드에서 드론 배송을 신청하더라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아마존의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당이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하고 나무나 전선이 없어야 합니다. 또 드론 상품을 내려놓을 별도의 착륙 공간도 필요합니다. 와이어드는 “신청자의 가족들은 예정된 드론 배달 시간에 착륙 공간 인근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각서에도 서명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록퍼드 주민 몇몇은 아마존TV 스틱, 배터리, 보습 크림 등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주문부터 배송까지는 대부분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프라임 에어 직원 정리해고
드론이 홀로 배송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대의 아마존 프라임 픽업트럭이 항상 드론 배송을 따라 왔습니다. FAA가 감시가 없는 드론 배송을 여전히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이조스와 아마존이 도전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드론 배송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신청자에 한해 관리자가 입회하는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이 관찰자는 드론을 따라다니며 주변을 지나다니는 개, 어린이, 하늘에 떠 있는 연이나 취미용 드론에 대한 상황을 드론 조종사에게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배송을 위해 최소 6명의 사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FAA의 규정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도로를 따라 비행하는 것도 금지했고, 발전소 같은 주요 시설 상공도 지날 수 없습니다. 학교 상공도 비행 금지 구역입니다.
실제로 사고도 있었습니다. 2021년 6월 드론이 발사 직후 과열된 상태로 땅으로 추락해 산불을 일으켰습니다. 아마존 관계자는 “하드웨어는 완벽에 가까워졌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오작동을 일으킨다”면서 “이런 경우 모든 것이 오프라인 상태가 되고 드론은 벽돌이 된 상태로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아마존 내부에서도 아직까지 드론의 안정성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IT전문매체 더 버지에 따르면 오레곤에 있는 아마존의 테스트 시설에서 4개월 동안의 시험에서 5번의 드론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번거로움은 결국 이용자들의 불편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더 버지는 “두 곳의 테스트베드에서 첫 배송을 시작한 지 약 한 달 동안 실제 배송된 건수는 10건 미만이었다”고 했습니다. CNBC는 “아마존이 드론 배송 고객들을 모으기 위해 150달러 상당의 기프트카드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략적 판단 실패
10년간 아마존이 몸부림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020년 프라임 에어의 부사장으로 임명된 보잉 출신 데이비드 카본은 직접 드론을 개발하는 대신 아웃소싱하고, 2022년까지 1만2000회의 시험 테스트 비행과 1300명의 고객을 모집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목표는 어디까지나 목표에 그쳤습니다. CNBC는 카본의 거듭되는 장담에 대해 “비합리적인 자신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마존은 올해 2만7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는데, 850명의 프라임 에어 직원 가운데 140명도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테스트베드인 록퍼드와 칼리지스테이션 상주 직원은 절반이 해고됐습니다.
테크 업계에서는 아마존의 드론 배송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로 전략적 판단 실패를 꼽고 있습니다. 우선 아마존의 드론은 다른 회사의 배송용 드론에 비해 두배 가까이 무겁습니다. 비행의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추락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위험이 훨씬 크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FAA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아마존에 강력한 안전지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FAA 입장에서는 아마존을 표준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드론이 사업의 핵심인 다른 스타트업과 달리 아마존에 대해서는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충분한 요구를 해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해도 된다는 것이죠. FAA는 수년째 아마존의 운항 신청을 거부하거나 보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앞서가는 경쟁자들
물론 베이조스와 아마존의 드론 사업이 정체된 것만으로 드론 배송의 전망이 어둡다고 단정하기는 힘듭니다. 여전히 수많은 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미래를 찾고 있습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드론 배송 자회사 윙(Wing)은 현재 버지니아, 텍사스 같은 미국 지역은 물론 핀란드, 아일랜드, 호주에서 배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윙은 전세계적으로 30만건 이상의 상업 배송을 완료했습니다. 윙은 성공률이 87%라고 주장합니다.
오프라인 소매시장의 최강이자 아마존의 최대 경쟁상대인 월마트 역시 드론 배송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드론업, 플라이트렉스, 집라인 같은 드론 업체들과 제휴해 지난해에만 6000건 이상의 유료 배송을 실시했습니다. 가장 많이 배송된 제품은 아이스크림, 레몬, 로티세리 치킨, 레드불 등의 순입니다. 현재 드론 배송이 가능한 월마트 거점은 애리조나, 아칸소,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유타, 버지니아 등 미국 7개주 34개 매장에 이릅니다. 드론업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톰 워커는 “지금까지 10만8000회 이상의 비행을 했다”고 했습니다. 드론업은 총 6건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지만 500달러가 넘는 부상이나 재산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월마트는 “우리는 미국 인구의 90%에 인접한 4700개 매장에서 드론 배송을 대규모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들 기업 역시 상용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아마존과 같은 규제 장벽에 막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누가 안전성을 확실하게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명까지 구하는 드론
이스라엘 교통부는 이스라엘 공군과 함께 드론 배송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의 병원에 장비, 의약품을 운송해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물론 테이크아웃 음식 배달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까지 운송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월마트와 협업하는 드론 회사 집라인은 이미 아프리카 같은 3세계 국가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르완다처럼 물류가 열악한 지역에서 사람의 혈액을 실어 나르는 것이 주업무입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집라인의 드론은 르완다에서 병원 내 산모 사망률을 88%나 줄였고, 전세계 3000개 병원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제대로 된 길이 없으니 오히려 드론이 활성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더 빛을 발했습니다. 활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드론 배송이 충분한 가치와 효용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는 상업용 드론은 연평균 34.5% 성장해 2028년에는 1670억달러(약 22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과거 자동차가 길에 나서면 앞뒤로 여러명이 달라 붙어서 깃발을 흔들며 사람과 말을 통제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자동차 성능이 개선되고 도로와 교통 규제가 보완된 뒤에야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열렸습니다. 드론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는 드론 배송이 아니라 플라잉택시도 분명히 등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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