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동은’ 품는 해맑음센터는 누가 품어주나요
2023. 4. 10. 07:40
괴롭힘 피해자 95.6% 학교 복귀 도운 치유센터
건물 붕괴 위험 높은데 이전 후보지들 멀고 낡아
학교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은 자퇴 후 가해자를 찾아간다. 괴롭힘을 당하던 체육관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가해자의 눈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연진아.” 일생을 건 복수의 예고였다. 하지만 현실의 ‘문동은들’은 드라마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극심한 학교폭력의 피해자 상당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 또한 맺지 않으려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서진 피해학생들에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학교에선 대개 학교폭력대책심의위(학폭위)에서 가해자 조치가 내려지면 그것으로 학폭 사안이 ‘종결’됐다고 본다. 피해학생 상담절차가 있긴 하지만 ‘교실 속 공포’를 해결해주진 못할 때가 많다. 피해학생들이 일정기간 기존 교실을 떠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가질 수는 없을까. 대전엔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국내 유일의 기숙형 치유센터가 있다. 2013년 세워진 해맑음센터다.
‘문동은들’이 일어서는 법
지난 10년간 해맑음센터엔 335명의 ‘문동은들’이 다녀갔다. 이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 동안 이 센터에 머물며 심리상담, 체험활동, 예술치유 등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국어·영어·수학 등 기초교과수업도 진행돼 ‘출석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센터라고 부르지만 실은 학교다. 아이들은 주중에 이곳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 다녀온다.
학교폭력 치유에 특화된 이 학교의 힘은 통계가 입증한다. 해맑음센터에 온 학생들의 95.6%가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심리검사에선 불안·위축 등이 크게 개선됐다(2018~2021년 센터 입교 전·후 아동·청소년 행동평가척도를 검사한 결과). 학생 만족도 조사(2018~2022년)에선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전에 비해 밝은 모습으로 변화하게 됐다’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해맑음센터는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치유의 힘’을 길러주는 걸까. 이 학교에선 작은 성취감을 반복적으로 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을 유치원의 1일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하고, 탐방 수업 때는 직접 이동경로를 짜게 한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염색기술, 사진기술을 배워 마을 어르신들에게 염색을 해 드리고, 영정사진도 찍어드린다. 성취감이 쌓일수록 아이들은 또래 관계를 다시 맺을 용기가 생긴다. “결국 아이들은 친구들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러려면 당당해져야 합니다. 무너진 자존감을 스스로 다시 세우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죠.”(조정실 해맑음센터장)
부모도 치유받아야 한다
해맑음센터는 피해학생만 교육하지 않는다. 피해학생들의 부모들도 매달 두 차례 ‘집단상담’이나 ‘심리극’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아이들의 회복과 치유에는 부모님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동원 상담지원팀장)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가정에선 불화가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학교에서 마음을 다친 아이들은 등교를 거부하며 인터넷이나 게임에 과몰입하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끌어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인다. 가해학생들은 멀쩡히 학교에 다니는데, 피해자인 자신의 아이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부모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이들은 “헤쳐나가라”고 재촉하기만 하는 부모를 힘들어한다. 때로 억눌린 감정을 가족에게 쏟아내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님 대상 수업은 ‘아이들에게 잘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부모님들도 상처가 있기 때문에 위로를 해주는 시간입니다. 부모님 본인들의 얘기를 하면서 울분을 토해내야 아이를 안아줄 여유가 생겨요.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이동원 상담지원팀장)
해맑음센터 교육의 종착지는 원래의 학교로 돌아가는 ‘복교’다. 센터와 가정 양쪽의 지지를 받으며 순조롭게 회복하는 듯 보였던 아이들도 막상 복교의 순간이 오면 두려워한다고 한다. 간혹 교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돌아오는 아이도 있다. 또래의 시선이 여전히 버거워서다. 이곳의 선생님들은 복교가 다가오면 “설사 관계 맺기가 잘 안 되더라도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니 자책하지 말고, 힘들면 연락하라”고 당부한다. 복교한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해맑음센터의 선생님이 ‘응원방문’도 한다. ‘내가 힘들 때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고1 때 자퇴를 결심했다가 해맑음센터를 거쳐 복교한 뒤 대학에 진학한 A씨는 해맑음센터를 “나를 웃을 수 있게 해준 곳”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괴롭힘을 당하다 중·고교 진학 후에도 따돌림을 겪었던 그는 “숨을 쉬고 싶어서 자해하던” 아이였다. 그는 이곳에서의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통해 ‘누군가를 잘 돌보는 이’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하면서 “신기하게도 웃음이 많아졌다”고 했다. 어머니로부터 ‘그동안 혼자 두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해맑음센터를 다니며 처음 들었다.
해맑음센터는 50년 전에 지어진 폐교 건물을 사용 중이다. 지난해 가을, 학생 기숙사로 쓰고 있는 건물의 바닥이 갈라지고 한쪽이 꺼지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건물은 기울어 있다. 정밀안전진단을 받았더니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 D등급이 나왔다. 임시방편으로 학생들은 교사 관사를 기숙사로 쓰고 있다. “정밀진단을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 건물은 바닥에 나무막대를 대고 그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너무 오래돼 건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조정실 센터장) 노후화된 시설 때문에 상담을 온 부모의 절반 이상은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버스도 뜸하고, 택시를 부르기도 쉽지 않은 외진 곳에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무너져가는 폐교시설
교육부는 최근 경기, 충남, 경북의 폐교 세 곳을 ‘이전 후보지’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곳들도 지어진 지 60~70년 된 폐교인 데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배차가 드문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다. 조정실 센터장은 “부산이나 광주 등에선 버스나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 최장 7시간까지 걸리는데, 주말마다 집을 오가야 하는 아이들에겐 고역일 것”이라고 했다. 해맑음센터는 이전 장소를 다시 물색해 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이른바 ‘정순신 사태’로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소송 전략이 드러나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흥행까지 겹쳐지면서 학폭 가해자 처벌과 단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현실’은 그러나 통쾌한 응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피해자 치유 기숙학교인 해맑음센터가 열악한 시설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히 피해치유 정책엔 소홀한 교육당국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학생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장소로 이전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이동원 상담지원팀장)
학생들이 오가기 쉽고 시설도 튼튼한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해맑음센터의 소박한 꿈을 이뤄줄 수는 없는 것일까.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건물 붕괴 위험 높은데 이전 후보지들 멀고 낡아
“현실에선 문동은 캐릭터는 없다고 생각해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상대방을 해쳐서 통쾌해할 애들이 아니에요. 그만큼 정말 착하고 여린 친구들이 많아요.”(이동원 해맑음센터 상담지원팀장)
학교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은 자퇴 후 가해자를 찾아간다. 괴롭힘을 당하던 체육관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가해자의 눈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연진아.” 일생을 건 복수의 예고였다. 하지만 현실의 ‘문동은들’은 드라마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극심한 학교폭력의 피해자 상당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 또한 맺지 않으려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서진 피해학생들에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학교에선 대개 학교폭력대책심의위(학폭위)에서 가해자 조치가 내려지면 그것으로 학폭 사안이 ‘종결’됐다고 본다. 피해학생 상담절차가 있긴 하지만 ‘교실 속 공포’를 해결해주진 못할 때가 많다. 피해학생들이 일정기간 기존 교실을 떠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가질 수는 없을까. 대전엔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국내 유일의 기숙형 치유센터가 있다. 2013년 세워진 해맑음센터다.
‘문동은들’이 일어서는 법
지난 10년간 해맑음센터엔 335명의 ‘문동은들’이 다녀갔다. 이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 동안 이 센터에 머물며 심리상담, 체험활동, 예술치유 등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국어·영어·수학 등 기초교과수업도 진행돼 ‘출석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센터라고 부르지만 실은 학교다. 아이들은 주중에 이곳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 다녀온다.
학교폭력 치유에 특화된 이 학교의 힘은 통계가 입증한다. 해맑음센터에 온 학생들의 95.6%가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심리검사에선 불안·위축 등이 크게 개선됐다(2018~2021년 센터 입교 전·후 아동·청소년 행동평가척도를 검사한 결과). 학생 만족도 조사(2018~2022년)에선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전에 비해 밝은 모습으로 변화하게 됐다’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해맑음센터는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치유의 힘’을 길러주는 걸까. 이 학교에선 작은 성취감을 반복적으로 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을 유치원의 1일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하고, 탐방 수업 때는 직접 이동경로를 짜게 한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염색기술, 사진기술을 배워 마을 어르신들에게 염색을 해 드리고, 영정사진도 찍어드린다. 성취감이 쌓일수록 아이들은 또래 관계를 다시 맺을 용기가 생긴다. “결국 아이들은 친구들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러려면 당당해져야 합니다. 무너진 자존감을 스스로 다시 세우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죠.”(조정실 해맑음센터장)
부모도 치유받아야 한다
해맑음센터는 피해학생만 교육하지 않는다. 피해학생들의 부모들도 매달 두 차례 ‘집단상담’이나 ‘심리극’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아이들의 회복과 치유에는 부모님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동원 상담지원팀장)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가정에선 불화가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학교에서 마음을 다친 아이들은 등교를 거부하며 인터넷이나 게임에 과몰입하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끌어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인다. 가해학생들은 멀쩡히 학교에 다니는데, 피해자인 자신의 아이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부모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이들은 “헤쳐나가라”고 재촉하기만 하는 부모를 힘들어한다. 때로 억눌린 감정을 가족에게 쏟아내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님 대상 수업은 ‘아이들에게 잘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부모님들도 상처가 있기 때문에 위로를 해주는 시간입니다. 부모님 본인들의 얘기를 하면서 울분을 토해내야 아이를 안아줄 여유가 생겨요.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이동원 상담지원팀장)
해맑음센터 교육의 종착지는 원래의 학교로 돌아가는 ‘복교’다. 센터와 가정 양쪽의 지지를 받으며 순조롭게 회복하는 듯 보였던 아이들도 막상 복교의 순간이 오면 두려워한다고 한다. 간혹 교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돌아오는 아이도 있다. 또래의 시선이 여전히 버거워서다. 이곳의 선생님들은 복교가 다가오면 “설사 관계 맺기가 잘 안 되더라도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니 자책하지 말고, 힘들면 연락하라”고 당부한다. 복교한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해맑음센터의 선생님이 ‘응원방문’도 한다. ‘내가 힘들 때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고1 때 자퇴를 결심했다가 해맑음센터를 거쳐 복교한 뒤 대학에 진학한 A씨는 해맑음센터를 “나를 웃을 수 있게 해준 곳”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괴롭힘을 당하다 중·고교 진학 후에도 따돌림을 겪었던 그는 “숨을 쉬고 싶어서 자해하던” 아이였다. 그는 이곳에서의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통해 ‘누군가를 잘 돌보는 이’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하면서 “신기하게도 웃음이 많아졌다”고 했다. 어머니로부터 ‘그동안 혼자 두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해맑음센터를 다니며 처음 들었다.
해맑음센터는 50년 전에 지어진 폐교 건물을 사용 중이다. 지난해 가을, 학생 기숙사로 쓰고 있는 건물의 바닥이 갈라지고 한쪽이 꺼지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건물은 기울어 있다. 정밀안전진단을 받았더니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 D등급이 나왔다. 임시방편으로 학생들은 교사 관사를 기숙사로 쓰고 있다. “정밀진단을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 건물은 바닥에 나무막대를 대고 그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너무 오래돼 건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조정실 센터장) 노후화된 시설 때문에 상담을 온 부모의 절반 이상은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버스도 뜸하고, 택시를 부르기도 쉽지 않은 외진 곳에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무너져가는 폐교시설
교육부는 최근 경기, 충남, 경북의 폐교 세 곳을 ‘이전 후보지’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곳들도 지어진 지 60~70년 된 폐교인 데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배차가 드문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다. 조정실 센터장은 “부산이나 광주 등에선 버스나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 최장 7시간까지 걸리는데, 주말마다 집을 오가야 하는 아이들에겐 고역일 것”이라고 했다. 해맑음센터는 이전 장소를 다시 물색해 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이른바 ‘정순신 사태’로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소송 전략이 드러나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흥행까지 겹쳐지면서 학폭 가해자 처벌과 단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현실’은 그러나 통쾌한 응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피해자 치유 기숙학교인 해맑음센터가 열악한 시설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히 피해치유 정책엔 소홀한 교육당국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학생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장소로 이전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이동원 상담지원팀장)
학생들이 오가기 쉽고 시설도 튼튼한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해맑음센터의 소박한 꿈을 이뤄줄 수는 없는 것일까.
“피해자가 학교 떠나는 현실 여전”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해맑음센터장)은 2000년부터 10년간 해마다 4월 12일이 되면 백설기를 준비해 주변에 돌렸다.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이 학교폭력으로 의식을 잃었던 날이 2000년 4월 12일이었다. 딸은 5일 만에 깨어났다. “병원에서 기적이라고 했어요.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10년간 그날이 돌아오면 떡을 했죠.”
딸이 학교폭력을 당했을 당시 그는 오히려 피해가족이 궁지에 몰리는 처절한 경험을 했다. 가해자를 고소했더니 검사는 “애들끼리 싸운 거로 얼마를 벌려고 하느냐”면서 고발장을 면전에 던졌다. 지역방송에선 자신이 수억원의 보상을 요구했다는 가짜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지역유지였던 가해학생 가족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조 회장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다.
극도의 후유증을 겪은 딸은 학교에 있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때 해맑음센터 같은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시절엔 상담도 너무 비싸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여러 번 받기가 힘들었거든요.” 아이는 어렵게 학교로 돌아갔지만, 불안증세 때문에 수업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녔다. 때론 갑자기 학교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조씨는 숨어서 딸아이를 지켜보다가 교실로 데려오기를 반복하며 아이를 졸업시켰다. 그리고 5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가해학생 5명이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국회, 교육부, 교육청 등을 찾을 때마다 자꾸만 마주치는 ‘다른 피해가족들’이 있었다. 이들이 뭉쳐 만든 단체가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이다.
학가협이 만들어지고 나니, 전국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부모들이 찾아왔다. 학가협은 수많은 학폭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렸다. ‘학폭 피해 치료로 인한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 ‘학폭 피해 치료의 의료보험 처리’, ‘가해학생의 전학 조치’, ‘학교폭력 행위 생활기록부 기재(재발하지 않으면 졸업 시 삭제)’ 등을 요구해 관철한 것도 학가협이었다. 해맑음센터와 같은 ‘피해자 전담지원 시설’의 설립 역시 학가협이 초창기 내세웠던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 2021년에는 해맑음센터 말고도 광주와 대구에 통학형 치유센터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지난 20년간 학폭과 싸워왔지만, 조씨는 날로 교묘해지는 학폭 실태에 답답함이 크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사과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부모가 거의 없어요. 가해자 쪽에서 ‘쌍방 폭력’으로 몰고 가려는 전략을 쓰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피해자 쪽도 생활기록부에 기재될까봐 그냥 물러서 버리기도 하고요. 생기부 기재의 애초 취지를 벗어나 변호사 시장만 커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현실은 그대로잖아요. 우리 아이 때도 그랬거든요.”
40대에 학폭 피해자 운동에 뛰어들어 이제 노년을 바라보는 조씨는 교육당국이 피해당사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피해학생들과 부모들이 억울해하고 답답해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정책도 바로 세울 수 있어요. 학폭에 대한 관심이 커질 때만 구색맞추기로 ‘피해자 치유’를 말하지 말고, 교육당국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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