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앞두고 ‘美 감청’ 돌출… 韓 “진상 파악” 신중
대통령실 “美와 필요한 협의”
우크라에 살상무기 지원 관련
김성한·이문희 대화도 포함
“한·미동맹은 굳건” 강조 기류
안보실장 회의 열어 대응 논의
튀르키예, 러 지원 시사 폭로
NYT “동맹 관계 저해” 지적
“이 문제(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명확한 입장 없이 (한·미) 정상 간 통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 중인 나라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이문희 전 대통령실 외교비서관)
보도에 따르면 문건에는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관해 고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3월2일까지 우크라이나 지원에 관한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는 언급이 있는 점, 문건의 최초 유출 시기가 지난 2월28일인 점 등으로 미뤄 해당 논의는 두 사람이 교체되기 한 달쯤 전인 지난 2월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에는 “이 비서관은 ‘미국의 탄약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 아니게 된다면 정부가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며 “한국 관료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압력을 가할 것을 우려했다”고 적혀 있다.
또 김 전 실장이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속한 지원이므로 (무기·탄약 공급 루트인) 폴란드에 155㎜ 포탄 33만발을 판매하는 것은 어떠냐”고 ‘우회 지원’ 방안을 제안하자 이 전 비서관이 ‘폴란드가 최종 사용자여야 한다는 확약’을 받는 것을 전제로 동의한 사실도 담겼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한국에서 155㎜ 포탄 10만발을 구매하면서 우회 지원 논란이 불거졌는데, 이후로도 미국 측의 탄약 지원 요구가 계속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문건은 출처를 전자 도청, 통신 감청을 뜻하는 ‘신호정보’(Signals Intelligence·시긴트)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이 도·감청을 통해 한국 정부의 내부 논의를 감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 외 다른 동맹·우방국도 미국의 감시망에 있었다. 미국은 시긴트를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일원인 튀르키예, 중동의 우방국인 이스라엘 관련 정보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캐나다 등 동맹국의 첩보 활동에 대한 언급도 들어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유출 문건의) 세부 내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때로는 분노했다”고 전했다. NYT는 “도청 사실이 공개된 것은 한국 등 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에 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문건 중 하나는 러시아의 민간 용병업체 ‘와그너그룹’ 측이 우크라이나와 말리 전장에서 쓸 무기·장비를 사려고 튀르키예 관계자를 만났으며, 아시미 고이타 말리 임시대통령이 “와그너그룹을 대신해 튀르키예로부터 무기를 사주겠다”는 확약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리를 통한 무기 우회 공급 논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문건에는 국방부뿐 아니라 NSC,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의 첩보 활동 결과도 담겨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일부에는 외국과 공유하지 않는 기밀 문서라는 의미인 ‘Secret/NOFORN’ 표시가, 다른 문서엔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 ‘파이브 아이즈’ 등 가까운 동맹에만 제공할 수 있다는 표시가 돼 있었다.
미 당국은 지난 6일 NYT의 첫 보도 전까지 유포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밀 내용은 문건을 찍은 사진 형태로 지난 2월28일, 3월2일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Discord)에 처음 공유됐다. 국방부는 기밀 취급에 관한 통제 수위를 높이고 자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법무부도 유출 경위 수사에 나섰다.
유태영·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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