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盧 돕지 않던 문재인·좌파 언론… 서거 후 喪主 코스프레”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통해
‘노무현 사건’ 수사 내용 공개한
이인규 前 대검 중앙수사부장
“지금이 이재명 정권이었어도 책을 출간했겠느냐”고 묻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미간이 살짝 패었다. “물론입니다. 팩트잖아요. 이걸로 제가 시달릴 수는 있어도 저를 십자가에 매달 순 없습니다. 출간하지 않을 거면 제가 왜 5년 동안 이 책을 썼겠습니까.”
이인규(65)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지난달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조갑제닷컴)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란 부제가 암시하듯,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관련자들의 실명(實名)과 함께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2억짜리 명품 시계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가 대부분 사실이었고, 노 대통령을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문재인 당시 변호사에게도 있다고 주장해 노무현재단과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정치 검사의 2차 가해”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란 비난을 받았다.
지난 5일 만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좌파 언론과 민주당 정치인들은 지금까지도 ‘논두렁 시계’ ‘망신 주기’란 말로 검찰이 모욕을 줘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선동한다. 인터넷에는 온갖 억측과 허위 사실이 진실인 것처럼 떠돈다. 국민의 알 권리, 올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가족의 금품 수수 사실을 몰랐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권양숙 여사가 노 대통령 모르게 박연차 회장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은 없다”고 했다. 책은 출간 2주만에 4만3000부를 찍고 종합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 “유족 위해 공소시효 끝난 뒤 출간”
-부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사실상의 제목이다.
“지난 14년간 끊임없이 저와 검찰을 향해 조작 수사, 망신 주기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공격하며 자신들 정치에 이용해 온 세력에 대한 반박 질문이다. 진짜 누가 대통령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지 따져보자는 심정으로 붙였다.”
-집필을 결심한 건 언제인가.
“대선을 앞둔 문재인 후보가 자서전 ‘운명’을 출간한 2011년이다.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직후인 2009년 6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 보복에 의한 타살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가 2년 뒤 자신의 책 ‘운명’에서는 ‘(검찰엔) 언론을 통한 모욕 주기와 압박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때 바로 반박할까 생각했으나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그만뒀다. 다만 그날 기사를 오려두었다가 ‘운명’과 함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번 책에 인용했다. 수사 개요를 부록으로 붙인 건 이걸로 (그간의 논쟁을) 끝내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1년 시점에 책이 나와 말들이 많다.
“책 말미에 노 대통령 수사 개요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이것이 공개됐을 때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면 우파 진영에서 대통령의 유족을 기소하라는 요구가 강하게 나왔을 것이다. 이 경우 유족은 물론 검찰도 입장이 난처해질 거라 판단했다. 유족을 사법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공소시효(2023년 2월21일)가 끝난 뒤 책을 냈다. 윤석열 정부와는 아무 관련 없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 검사가 검찰 정권에 바친 글”이라고 비난했다.
“책에는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검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적었다. 내가 정치 검사였다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유리한 내용만 썼을 것이다. ‘검찰 정권’ ‘검찰 공화국’ 하는데 문재인 정권 때는 적폐 청산한다고 임기 내내 얼마나 많은 수사를 했나. 그때 수사는 로맨스이고 지금 하는 수사는 불륜인가.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검찰 공화국인가.”
-재단측은 “(검찰의) 수사기록은 진실이 검증된 문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금품수수자 21명이 기소돼 19명이 유죄로 확정됐다. 이는 보통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는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수사가 탄탄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사자명예훼손 등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여야 하는데 내 책에 허위 사실은 들어 있지 않다. 공무상비밀누설죄는 기밀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 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공소권 없음’ 처리된 사건의 수사 내용을 공무상 비밀로 인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의 수사 내용에 대해서 국가가 비밀로 유지해야 할 아무런 이익이 없다. 또한 대한민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우월한 가치는 없다. 모든 비난과 책임은 감수할 것이다.”
-유시민 전 이사장은 ‘윤석열·한동훈 검찰에 사건을 줘야 하므로 고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은 검찰만 있는 게 아니고 경찰, 공수처도 있다. 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책 내용은 수사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고소를 할 경우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수사 기록 공개가 불가피해지니 고소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법조계에서조차 ‘피의자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 지휘자가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출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을 수용한다. 그러나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권양숙 여사, 형 노건평씨, 아들 노건호씨, 딸 노정연씨, 조카사위 연철호씨, 그리고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유족 측에서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논두렁 시계는 검찰에 씌운 올가미”
-노 전 대통령 측은 ‘박연차 회장의 진술 말고는 (검찰이) 아무런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박연차의 진술을 배제하고 사건을 설명해 보겠다. 명품 시계 수수에 관해 형 노건평씨는 ‘2006년 9월 27일 박 회장으로부터 노 대통령 회갑 선물로 2억원 상당의 피아제 남녀 명품 시계 1세트를 받아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가족 모임에서 노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했으며, 박 회장에게 노 대통령 내외의 감사 인사를 전해 주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자신의 진술과 다른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전해 듣고도 기존 진술을 재차 확인해 주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권양숙 여사가 시계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회갑일 청와대에서 받은 것이 아니고, 노건평씨의 처가 1년 5개월간 보관하고 있다가 퇴임 후 봉하마을 사저에서 전달했으며, 권 여사는 이러한 사실을 1년 이상 숨겼다가, KBS 보도 후 권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다. 시계 수수 후에도 봉하마을 사저 부지 매매, 미국 주택 구입 자금 140만달러 수수, 아들 사업 자금 500만달러 수수는 물론 퇴임 후에도 노 대통령이 직접 15억원을 빌리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권 여사가 그런 박 회장의 선물을 대통령에게 숨길 이유가 없다.”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를 받아 미국 뉴저지에 주택을 구입한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이 모를 수 있지 않나.
“아내, 딸, 아들, 친구 정상문 비서관, 김만복 국정원장, 박연차 회장 등 주위 사람은 미국 주택 구입을 알거나 인식하고 있는데 노 대통령만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100만달러는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있어 빌린 것이며, 미국에 집을 사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박 회장 최측근인 모 사장은 노 대통령이 IOC 총회 참석차 과테말라로 출국하기 3, 4일 전인 2007년 6월 100만달러를 보내달라는 정 비서관 요청에 따라 직원 130여 명을 급히 동원해 100만달러를 환전한 뒤 출국 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는 정상문도 검찰에서 진술한 바다.”
-노건호, 연철호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사업자금 500만달러를 받아 쓴 것도 두 사람이 박 회장에게 사업을 설명하고 받은 투자 자금으로 노 대통령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투자 대상, 이익 배분, 투자 회수 방법 등도 정하지 않았고 투자 계약서도 없다. 박 회장 지분은 하나도 없음이 확인됐다. 500만달러 중 일부를 사용해 노 전 대통령이 개발한 인력 관리 프로그램 ‘노하우 2000′을 업그레이드해 봉하마을에서 시연까지 했다. 500만달러를 송금한 태광실업 최모 전무는 ‘어차피 주기로 한 돈인데 따지지 말고 송금해 주라’는 박 회장 지시를 받고 ‘대통령과 무슨 이야기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으며 대가 없이 준 것이라고 명백히 진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박 회장이 500만달러라는 큰돈을 사업 경험도 없는 노건호, 연철호에게 주었을까. 대부분의 혐의에 관여돼 있는 정상문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검찰에서 ‘(금품 수수를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이렇게 부인해서 될 일이 아니다. 변호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대(對)국민 사과를 하는 방안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 “권양숙 여사에 굴레 씌우는 건 가혹”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권양숙 여사가 가장 억울한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권 여사가 정상문 비서관에게 부탁해 빌렸다고 주장하는 3억원 외에 노 대통령 모르게 박 회장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수수한 사실은 없다. 권 여사에게 남편을 죽게 만든 사람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가혹하다. 노 전 대통령도 바라지 않으실 거다.”
-문제의 ‘논두렁 시계’ 논란을 촉발한 SBS 보도에 격분했다. 배후에 이명박 정부와 국정원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고소도 당했다.
“‘논두렁 시계’는 좌파 정치인들이 검찰에 씌운 프레임이자 올가미다. 문재인, 전해철 변호사는 노 대통령 조사 당시 입회해 시계 관련 발언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 내외가 명품 시계 받은 사실은 감추고 ‘밖에 내다 버렸다’고 한 노 대통령의 검찰 진술이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고 잘못 보도된 것을 빌미 삼아, ‘논두렁에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시계 및 금품을 받지 않은 것처럼 교묘하게 논리를 만들었다. 더구나 이는 청와대와 국정원이 명품 시계 수수와 관련한 KBS와 SBS 보도에 개입한 바람에 생긴 것이라 더욱 화가 났다. ‘논두렁 시계’를 보도한 SBS는 취재원 보호라는 명분으로 거짓 내용을 흘린 사람을 끝내 밝히지 않았고, 내가 SBS ‘논두렁 시계’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고 발표하자 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검찰은 그 사건을 4년이나 방치하다가 나에 대한 소환 조사도 없이 2022년 10월 무혐의 처분했다.”
-노무현의 죽음엔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직전 7일 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극단적 선택 다음 날인 5월 24일 권 여사에 대한 조사가 예정돼 있음에도 ‘현안이 없었다’면서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이 없으며, 검찰과 접촉해 수사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솔직한 입장을 묻고 증거와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대통령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진보 진영과 진보 언론도 노무현을 가혹하게 비난하면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썼다.
“비판을 넘어 인격 모독,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한 것은 사람보다 진영 보호를 우선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랬던 그들이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노무현 정신을 외치며 상주 코스프레를 했다. 그 모습에 제일 당황한 이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유언한 노 전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그는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이 자신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2017년, 왜 미국으로 떠났나. 문 정권이 두려웠나.
“일하던 로펌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7년간 변호사로 일했는데 즐겁지 않았다. 로펌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원망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두렵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며 출국을 결심했다. 홈앤쇼핑 강남훈 대표는 고교 동창으로 둘도 없는 친구다. 경찰과 검찰은 홈앤쇼핑을 수사해 나와 관련된 비리를 찾으려고 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제가 출국한 뒤에도 강 대표를 취업비리로 기소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구속됐으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강 대표는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는 민간인 사찰의 DNA가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위선이 가증스럽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에서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좌표’를 찍은 뒤 당신은 물론 가족이 악플에 시달렸다. 미국 유학 중이던 딸의 페이스북에 ‘살인자의 딸’, ‘노무현을 죽인 대가로 공부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추적해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은 미국 버지니아 애난데일에서 에어로빅 강사를 하는 미씨 USA 소속 우리나라 교포였다.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또한 무지해서 그런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고 참아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딸은 예상치 못한 신상털이와 황당한 인신공격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고, 아내는 자식들이 고통 받는 걸 보고 가슴 아파했다. 잘 이겨내 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 “권력 하명받아 수사한 적 없다”
-이인규는 정치 검사인가.
“정치 검사의 뜻이 뭔가. 정권의 하명을 받아서? 자기의 출세를 위해 수사? 맹세코 나는 권력의 하명을 받아서 수사한 적이 없다. 출세는 하고 싶었을 거다. 총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싶고. 그렇다고 누구의 구미에 맞춰 수사를 하는 건 검사가 아니다.”
-책 출간 후 한 언론은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시 이인규가 삼성·LG·롯데 등에게 ‘부당내부거래’를 수사하겠다고 겁을 주어 대선자금 진술을 받은 것을 ‘협박 수사’라고 비판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의 핵심 과제는 삼성·LG 등 거대 재벌로부터 여야 정치권에 대한 대선자금 제공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 내에 그들의 입을 열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업 공시 내용에서 ‘부당내부거래’로 의심되는 내용을 지렛대로 사용한 것이다. 불법적인 내용이 있었다면 그쪽 변호사들이 가만히 있었겠나. 제 책에는 1991년 해당 신문사 기자가 삼성반도체통신 뇌물 공여사건 수사와 관련해 저에게 삼성그룹을 대신해 돈 봉투를 전달하려 했다고 기술한 내용이 나온다. ‘협박수사가 자랑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나를 과하게 비판한 것은 이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권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권 당시 적폐 수사라는 이름으로 전 정권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수사를 했다. 그때의 문 정권도 검찰 정권이었나. 검찰이 수사를 많이 하는 건 부패한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등 ‘거악’이 많아서다. 그들이 죄를 짓지 않으면 검찰이 수사할 일이 없다.”
-그러나 검찰 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현재 검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영화 조짐이다. 현 정권 검사들이 지난 정권 검찰이 한 수사를 자기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준사법기관인 검찰 조직이 진영화되고 있다는 증좌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검찰 인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문 정권은 소위 ‘빅4′라는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수사부장,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경력과 능력에 상관없이 코드 인사로 채웠다. 그들은 분에 넘치는 자리를 준 문 정권에 보은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는 다 아는 대로다.”
-정치에 뜻이 있어 책을 출간했나.
“저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이지 정치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요즘 정치를 보면 마치 프랑스혁명 전 앙시앵레짐을 보는 것 같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진영 논리만 넘쳐난다. 원칙과 품격은 사라지고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젊고 합리적인 분들이 정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530쪽 분량의 회고록에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수사 때 막내 검사로 활약한 한동훈 현 법무장관에 관한 일화도 나온다.
“저는 저보다 뛰어난 후배 검사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동훈 장관도 그런 검사였다. 머리가 정말 좋고.”
-국회의원들에게 또박또박 말대답을 해서 지적을 많이 받던데.
“옛날에도 그랬다(웃음). 상사에게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스타일이) 갑자기 바뀌겠나. 시대가 바뀌었다. 팩트로 반박하고 논쟁이 이뤄져야 정치도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불법대북송금 사건을 비롯해 김대업 병풍(兵風) 수사와 관련된 검찰 비리,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에서 시작된 제16대 불법대선자금수사의 전말 등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수사 관련 정치인들과 검찰, 국정원 관계자들의 이름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實名)으로 등장한다.
“책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분들은 공인(public figure)들이다. 공인들은 역사와 국민 앞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명을 썼다. 그 분들로 하여금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다.”
-노무현 수사로 천직으로 여겨온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억울한가.
“다 잊었다. 책을 탈고한 뒤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겠는가.
“2009년 1월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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