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칼럼] 쌀 수급 문제, 발상을 바꾸자

관리자 2023. 4.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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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규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지금, 모두 발상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2020년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며 가격하락 문제는 시장격리로 대응한다는 내용으로 양곡관리법을 개정했다.

시장격리제의 가장 큰 약점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가격 하락을 막으려면 격리 물량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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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규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지금, 모두 발상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2020년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며 가격하락 문제는 시장격리로 대응한다는 내용으로 양곡관리법을 개정했다. 따라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하자는 주장은 양곡관리법 개정 취지에 맞다. 하지만 법 개정의 취지를 떠나 시장격리제가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인가 생각해야 한다.

시장격리제의 가장 큰 약점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가격 하락을 막으려면 격리 물량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산 초과량 추정에는 오차가 불가피해 시장격리를 했음에도 가격이 뜻밖에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을 이미 여러차례 경험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쌀 실질가격이 2000년 이후 30% 이상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가격 변동성이 10년 전보다 두배나 높아져 농가경영을 위협하고 있다. 자동시장격리제를 거부하려면 이런 현실에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이미 처방전을 제시했다고 할지 모른다. 이에 따라 올해는 콩·가루쌀(분질미)·사료작물 등을 심어 벼 재배면적을 3만7000㏊ 감축한다. 동시에 다수확 품종 종자 공급을 중단해 단수 증가를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한마디로 정부 주도로 쌀 생산을 줄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처방전은 자동시장격리제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소비 감소에 따라 전략작물 재배면적은 계속 증가하고 직불 단가를 높일 수밖에 없다. 전략작물 재배면적 목표를 채워도 쌀 단수가 변동해 쌀이 남을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

덤으로 가격 하락 문제가 전략작물로 확산할 위험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유사한 정책을 이름만 바꿔가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미국과 일본에서 그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더욱이 쌀 단수 증가를 억제한다는 것은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우리나라 농업이 가야 할 방향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이제 발상을 전환하자. 정부 주도로 쌀 생산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높이려는 생각을 버리고 시장에서 가격과 수급이 결정되도록 하자. 대신 쌀 가격이 기준 이하로 하락하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하는 미국식 가격손실보상제도(PLC)를 도입해 대응하자. 미국과 같이 생산과 연계되지 않도록 해 과잉생산 유인도 차단하자.

동시에 기존의 벼 재배지가 수요가 늘어나는 다양한 작물로 흘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자. 콩의 예를 보자. 정부는 벼를 심었던 논에 콩을 심으면 10a당 5만원의 보조금을 준다지만, 콩은 가격 변동성이 쌀의 2.2배고 단수 변동성도 2.4배나 돼 수익 변동성이 쌀의 5.4배에 달한다. 쌀농사에 비해 위험성이 크다. 다른 작물도 대동소이하다.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국민의 밥상을 지키는 데 필요한 중요 농산물에 쌀과 마찬가지로 PLC를 도입하자.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이 제도를 15개 주요 농산물에 적용했다. 전체 농지의 80% 내외가 이 제도의 우산 아래 있다. 미국 농정의 핵심이다. 작물보험도 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동시에 경지정리 사업으로 기계화 조건을 정비했듯 논 배수개선 사업을 통해 콩 등 다양한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자. 무굴착 배수관 매립 기술도 개발돼 있지 않은가.

정부 주도로 쌀 생산과 가격을 조정하려는 이뤄질 수 없는 생각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비로소 대안이 보일 것이다.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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