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댐의 빛과 그림자②] 1. 소양강댐이 바꾼 지역의 운명

오세현 2023. 4.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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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22m 더 높았다면 인제 전체 물 속으로… 운명 가른 123m
소양강댐 건설 초, 댐 높이 결정 입장차
한전 ‘발전용’ vs 건설부 ‘다목적’ 팽팽
소유권 분쟁 이어져 각 부처 평행선 달려
145m 결정 땐 인제 전체 수몰될 위기
박정희 전 대통령 ‘다목적 중댐’ 결론
여유고 1m 추가, 댐 높이 123m 종지부
인제읍·남면 11개 리 ‘수면 아래로’
인구 줄며 양구-인제 행정구역 재편
가로국민학교 등 폐교·분교장 축소도
댐 건설 소식에 주민들 뿔뿔이 흩어져
중학교 졸업 후 서울 간 수몰민 심영근 씨
“댐 없었더라면 고향·학교 물에 안 잠겨”
▲ 인제군 38선휴게소에서 바라본 소양호. 인제 수몰지역 대부분이 소양호 아래에 잠겨있다.

6·25 전쟁 이후 춘천과 양구, 인제의 운명은 소양강댐 건설 전, 후로 나뉜다. 높이 123m, 저수용량 29억t으로 건설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소양강댐은 한강 이남지역의 홍수조절, 전력 공급 등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이면, 수몰민들과 댐이 들어선 지역은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해야 했다. 고향을 잃었고 학교가 물에 잠겼으며 마을이 두 동강났다. 어디로 가야하는 지도 모른 채 무작정 짐을 챙겼고, 지역 전체가 고립돼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소양강댐 준공 50주년을 맞아 ‘소양강댐 준공 50주년 빛과 그림자’를 통해 소양강댐 건설 과정과 춘천지역 수몰민들의 애환을 집중조명 해 온 강원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소양강댐 준공 50주년 빛과 그림자 2’를 연재한다.

소양강댐 상류지역인 인제와 댐 건설로 지역 전체가 ‘수몰민’이 된 양구를 분석하고 댐으로 인한 지역사회의 갈등,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까지 모색한다.

▲ 수몰지역 도로. 사진제공=소양강댐 물문화관

■ 높이 123m와 인제

소양강댐 높이 123m는 인제 지역의 존립과 직결돼 있다. 댐을 어느 정도의 높이로 건설하느냐에 따라 소양강댐 상류지역이었던 인제의 수몰 정도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소양강댐 건설 초기 한전과 건설부의 신경전은 대단했다. 한전은 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발전 전용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건설부는 홍수 조절까지 겸한 다목적댐이 적합하다고 봤다. 이는 소유권 문제로 확산됐다. 발전 전용 댐이 만들어지면 소유권은 한전이 갖지만 다목적댐을 지을 경우 소유권은 건설부가 갖는다. 높이를 두고도 부처 간 입장은 엇갈렸다. 당시 한전은 높이 86m(10억t) 규모로 시공하려 했지만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고 있던 건설부 산하 한강유역조사단은 높이 145m(45억t)를 추천했다. 여기에 건설부는 차선으로 높이 122m(29억t)를 택했다.

당시 정일권 전 총리가 각 부처 간 조정을 시도했으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정일권 전 총리 입장에서도 결정은 쉽지 않았다. 145m로 결정되면 인제 전체가 수몰되기 때문이다.

▲ 연차별 수몰지역 현황도. 사진제공=소양강댐 물문화관

인제는 정 전 총리의 표밭이었다. 정 전 총리는 소양강댐 건설이 마무리되던 1973년 2월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속초·인제·고성·양양 선거구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결정만이 남았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3가지 안(높이 145m, 122m, 86m)이 제안됐다. 건설부는 정 전 총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박 전 대통령과의 직접 면담을 시도, 승낙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정 전 총리가 귀국한 직후 “소양강댐은 다목적 중댐 규모로 건설하라”고 정식 지시공문을 발송, 장기간에 걸친 부처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춘천학연구소가 펴낸 춘천인증언록 ‘댐과 춘천’은 “건설부 차관은 직접 박정희 대통령께 3가지 안을 가지고 브리핑을 하자, 122m로 하라는 안을 받아 냈다. 여유고 1m를 추가해 댐 높이가 123m가 된 것이다. 만일 145m로 됐다면 인제 시가지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가 있다”고 했다. 댐 높이 123m는 이렇게 인제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 당시 신문에 게재된 수몰지구 약도. 사진제공=소양강댐 물문화관

■ 물에 잠긴 11개 리(里)

1960년대 중반, 국가에서 댐을 짓는다는 얘기가 인제 지역에도 전달됐다. 눈 앞에서 공사가 진행됐던 춘천과 달리 인제지역은 ‘보이지도 않는 댐’을 짓는다고 하니 혼란은 더 컸다.

인제 남면 관대리에 살고 있는 김대현(68)씨는 “중학생 쯤 됐을 때부터 공사가 시작됐는데 시대적인 분위기가 나라에서 하는 일에 토를 달 수 없었다”며 “댐이 들어선다고 하니까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인제군 수몰지역은 인제읍과 남면에 집중됐다. 인제읍에서는 상동리와 남북리, 합강리가 수몰됐고 남면에서는 신월리, 신남리, 부평리, 남전 1리, 남전 2리, 관대리, 신풍리, 두무리 등 8개 지역 전체, 혹은 일부가 물에 잠겼다. 모두 11개 리다.

마을이 물에 잠기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양구와 인제 간 행정구역도 재편됐다.

강원연구원 강원학연구센터가 지난해 5월 인제군에 제출한 ‘소양호 주변(수몰지역) 망향 공간 조성 관련 자료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1973년 7월 1일 소양강다목적댐 건설로 수몰지역 주민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생활여건이 바뀌고 인구수가 줄어들자 행정구역을 개편, 인제군 남면 두무리를 양구군 남면으로, 양구군 남면 상수내리와 하수내리·춘성군 북산면 수산리를 인제군 남면으로 편입시키면서 상수내리와 하수내리를 합해 상하수내리가 됐다”고 했다.

학교가 입은 피해도 상당했다. 가로국민학교, 부평동국민학교, 신월국민학교, 부평국민학교 수내분교장이 소양강댐 건설과 맞물려 폐교됐거나 분교장으로 축소됐다.

인제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수몰과 맞물려 서울로 이사를 가야 했던 심영근(67)씨는 “댐이 들어서지 않았으면 내가 서울에 갈 일도, 고향과 학교가 물에 잠길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소양호만 바라보면 난 아직도 중학생이 된 것 같다. 동생들은 당시 너무 어려서 수몰 상황을 기억 못하는 데 나는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니 아쉬움이 더 크다”고 했다.

오세현 tpgus@kado.net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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