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이 인정된 이유 [세상을 이기는 따뜻한 법(法)]

2023. 4. 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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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6일 전남 나주시 금성관 앞에서 열린 망국적 굴욕외교 윤석열 정부 규탄 나주시민 일동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을 내놓으면서 반대하는 국민여론으로 뜨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법원이 이미 종결된 청구권 협정을 뒤집고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하여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1965년 한일 양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대법원은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해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일까?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 기본적인 법적 개념을 알아야 한다.

첫째, '청구권(채권)의 발생원인'이다. 채권은 크게 ①계약상 채권과 ②법정채권으로 나뉜다. 계약상 채권은 A와 B가 계약을 체결해서 갖게 되는 권리이고, 법정채권은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예컨대 A가 B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B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불법행위, 부당이득이 여기에 해당된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과 체결한 '근로계약'에 따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한 것이라면 계약상 채권이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피해자를 강제 노동시키고, 도주하다 발각되면 심하게 폭행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라면 법정채권이다. 두 청구권은 법적으로 구별된다.

둘째, '손해의 종류'이다. 크게 ①재산상 손해와 ②비재산상 손해로 나뉜다. A가 B에게 폭행을 당해서 병원비를 지출한 것은 재산상 손해이고,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비재산상 손해이다.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상'과 '보상'은 구별된다. 불법행위가 원인이 되면 '배상'이고, 적법행위 예컨대 국가의 토지수용이 원인이 되면 '보상'이다.

그렇다면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청구한 청구권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권, 즉 '위자료 청구권'이다. 이 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의 협상과정에서 포함된 적이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협상 당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협상의 일방 당사자가 자신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상대방 당사자가 협상 안에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이 포함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협상을 진행한 박정희 정부도 1965년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서 "한국은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 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한·일 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 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일본 측에 대한 불법행위 배상 청구권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당시 협상을 진행한 정부에 의해 입증된 것이다.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일회담에서 제출된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 중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포함되었지만 이 또한 일본 측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대법원의 판단은 법리적으로 명확하고 수긍할 만하다. 나아가 위 결론은 2012년 대법원이 밝힌 법리를 2018년 대법원이 재확인한 것이다.

생존 피해자 3명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우회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법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를 풀어갈 현실적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소제인 법무법인 (유)세한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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