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도 사업취소 속출… PF대출 21조, 부동산 뇌관되나

이성훈 기자 2023. 4. 10. 03: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MF도 지적한 PF대출, 실태 어떤가 살펴보니

서울 강남구 청담동 ‘루시아청담514 더테라스’ 사업. 지난해 평(3.3㎡)당 분양가 2억원대로 유명해진 프로젝트다. 그런데 최근 해당 부지가 공매로 나왔다. 공매마저도 세 번 유찰돼 2263억원이던 최저 입찰액이 1650억원으로 낮아진 채 진행 중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한데, 시행사는 이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1520억원을 브리지론(초기 사업 대출금)으로 조달했다. 사업 인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면, 은행 등에서 본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받게 되는데, 이 돈으로 브리지론을 상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불황과 건축비 급등 때문에 본사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땅이 공매로 나온 것이다. 만약 공매가 한 번 더 유찰되면 최저 입찰액이 1500억원 밑으로 떨어져, 브리지론에 참여했던 금융회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 여신 전문 회사 관계자는 “본사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만기만 연장하는 브리지론들이 많다”며 “부실이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행사가 300가구 규모 아파트 개발 사업을 추진했지만, 부동산 불황으로 사업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공매로 나온 서울 서초구 방배동 ‘클럽54’ 골프연습장 부지. 공매에 부쳐진 후에도 일곱 번 유찰되면서 감정평가액의 절반 수준 가격에 겨우 주인을 찾았다. /고운호 기자

브리지론발 부동산 대출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한국의 PF 대출은 자금 구조가 취약하다”며 콕 찍어 경고하는 등 국내 PF 시장에 대한 기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과연 부동산 시장의 현실은 어떨까?

현장 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한 결과,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부지마저 공매로 나오는가 하면, 시행사들이 인허가 절차를 연기하는 등 PF 부실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었다. 특히 사업 초기 자금을 대는 브리지론의 부실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 증권·캐피털·저축은행의 브리지론 대출 잔액은 21조원에 이른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약 1년 전 부동산 호황 끝물에 받은 브리지론들의 만기가 이제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공매로 나오는 물건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용산 알짜 땅, 줄줄이 공매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방배동 ‘클럽54 골프연습장’ 부지는 지난달 31일부터 공매가 시작됐지만 7번 유찰 끝에야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는 1497억원으로 최초 감정평가액(2819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경매 업계 관계자는 “워낙 입지가 좋고 면적도 넓어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팔렸다”며 “그만큼 부동산 시장의 공포 심리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고급 주택으로 개발이 추진됐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 주차장 부지도 2월 말부터 지금까지 6차례 공매에 부쳐졌지만 아직 주인을 못 찾았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선 30가구 규모 아파트가 공사 중인 상태로 토지와 함께 공매로 나왔다.

최고 입지로 통하는 서울 강남권과 도심에서까지 토지가 공매로 나오는 것은 사업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건축비 상승과 고금리로 인한 금융 비용 증가로 아파트·상가 등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사놓은 시행사들도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본사업 착수를 망설이고 있다. 땅 매입을 위해 조달한 브리지론의 만기를 연장하며 버티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금리가 급등하며 부담이 커지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브리지론 이자율은 한 자릿수였지만, 지금은 모두 10%가 넘고, 대출 수수료까지 더하면 20%가 넘는 경우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PF 대출 금리를 올리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사업장들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며 “결국 브리지론을 포함한 PF 시장이 더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1조원 브리지론이 뇌관 되나

부동산 관계자들은 “브리지론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1년 하반기부터 작년 상반기 사이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입하면서 브리지론을 받았던 사업장들의 만기가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가 국내 증권·캐피털·저축은행 61곳의 PF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며, 이들의 브리지론 대출 잔액은 21조원에 이른다. 26개 증권사 브리지론 잔액 9조1000억원 가운데 90%가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온다. 26개 캐피털사 브리지론 9조원 중 올해 안 만기의 비율도 88%에 이른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3~6개월 단위로 브리지론 만기를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 세 번 이상 만기 연장한 경우를 ‘위험 관리 대상’으로 보는데, 이런 대출들의 만기가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지론과 PF

기업의 안전성이 아니라 특정 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대출해 주는 금융 기법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라 한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활용하는 PF는 크게 브리지론과 본PF로 나눌 수 있다. 브리지론은 시행사가 토지 매입비와 초기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빌리는 돈으로 만기는 대부분 1~2년이다. 사업 인허가를 받기 전에 투입되며, 주로 증권사·저축은행·캐피털사 등 제2금융권을 통한다. 본PF는 시공사 선정 등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건축비를 조달하기 위해 빌리는 것으로 만기는 보통 3년 안팎이다. 주로 시중은행 같은 제1금융권이 취급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