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명의 가격’ 계산하는 정부
기업윤리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1970년 출시한 자동차 ‘핀토’ 사건이다. 핀토는 추돌 시 쉽게 폭발하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이로 인해 500명 이상 사망했다. 포드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에서 회사가 결함을 알고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소위 ‘비용-편익 분석’을 했다. 판매된 1250만대를 수리하면 한 대당 11달러, 1억3700만달러의 비용이 예상됐다. 그대로 팔면 180명이 죽고, 보상금으로 1인당 20만달러 등 총 4950만달러의 비용이 예상됐다. 사망보상금을 지급하는 게 이득이었던 것이다. 비용-편익 분석을 사람 목숨에까지 극단적으로 적용한 이런 일은 단지 과거 한 몰지각한 기업의 사례일까?
울산과 광주 공공병원 설립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비용 대비 편익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공공병원의 ‘편익’을 어떻게 계산할까? 한국개발연구원(KDI) 표준지침에 따르면 응급사망을 막는 것의 ‘가치’는 그 사람의 노동생산성과 같다. 그 계산법은 기대수명에 평균임금을 곱한 값이다. 이에 따르면 30대 환자의 가치는 4억1093만원이고, 80대 이상 노인의 가치는 487만원이다. 여기에 사망자 가족의 ‘슬픔의 가격’을 더한다. 슬픔은 얼마일까. 사망의 슬픔은 1억1607만원, 중상은 3370만원이다. 응급치료를 하면 사망자를 중상자로 만들어 그 차액인 8237만원의 편익을 얻는다. 종합하면 한 사람을 살리는 데 적절한 비용은 2억2569만원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가 정한 생명의 가격이다.
광주와 울산은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공공의료원이 없다. 이 지역들은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날 때마다 다른 지역 공공의료원에 병상을 달라고 사정해야 했고, 수백명의 환자들이 타지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평소에도 울산은 7대 특별·광역시 중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가장 높고, 광주는 응급·심뇌혈관 질환 골든타임 내 진료율이 가장 열악하다. 민간병원들이 있지만 감염병 치료도 필수진료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서 고통받는 사람 그대로의 가치를. 지방에서 암에 걸리면 서울로 올라가 수개월을 거주해야 하고 산부인과가 없어 출산의 위험 부담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겪는 불편과 두려움, 권리 차별을 해결하는 문제는 그들의 ‘편익’에 들어가지 않는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생명에는 가격을 매기면서도, 정작 사람들이 감당하는 고통과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따지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오직 ‘경제’에 이익이 될지만을 따져 묻는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민간병원에 코로나19 치료를 요청하며 4조원을 쏟아부었다. 이 돈이면 의료원 20개는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복지는 민간에 넘겨 준시장화해야 한다”는 나라에서 이런 비효율은 장려된다. 반면 공공병원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염원은 이들의 잔여 노동능력으로 생명의 가치를 셈하는 비정한 계산에 짓밟힌다. 이것이 우리가 공공병원 비율이 단 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이며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유다. 광주와 울산에 공공병원을 짓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우리 모두의 생명도 지킬 수 없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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