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현대음악과 친해지기
‘경계 넘어 융합’ 메시지 눈길…윤이상 겨냥 색깔공격 눈살
현대음악(Contemporary music)은 어렵다. 친절하지 않은 음이 많아 일단 듣기부터 힘들다.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음악에 익숙한 귀로는 더 친해지기 힘들다. 도대체 왜 이렇게 불편하고 난해할까. 챗GPT에 현대음악을 물었다.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음악을 말한다. 전통적 음악 형식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 형태와 기법을 탐구해 전자음악 현대클래식 아방가르드음악 신음악 등 다양한 장르로 분류된다. 기존 음악적 표현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식과 소리를 제공하고 현대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도를 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인데, 현대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더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에겐 현대음악과 익숙해질 기회가 매년 열린다. 경남 통영이 낳은 세계적 현대음악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을 기리는 글로벌 수준의 현대음악 축제, 통영국제음악제다.
올해로 21회를 맞는 ‘2023 통영국제음악제’가 지난달 31일 개막, 지난 9일까지 열흘간 개최됐다. 올해는 ‘경계를 넘어(Beyond Borders)’ 주제에 맞게 현대음악과 고전음악, 음악과 미술·문학, 동과 서가 서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런 점에서 올해 공연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융합’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로 꼽히는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이끈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개막작 1부 공연은 융합의 진수를 보여줬다. 라벨의 권두곡(피에르 불레즈 편곡)과 루치아노 베리오의 ‘신포니아’,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을 종합해 하나의 곡처럼 엮었는데, 전혀 연관 없는 이 세 곡이 하나의 작품인 듯 무리 없이 연결됐다. 주제 파트라 할 수 있는 베리오의 신포니아에서는 말러 교향곡 2번 3악장이 흐르는 가운데 마이크를 쥔 8명의 보컬리스트가 각자 중얼거리면서 불협화음을 낸다. 사무엘 베케트의 ‘무제’,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1968년 프랑스 혁명 당시 소르본대학의 슬로건 등 텍스트를 각자 읊조리는데, 마치 20세기 중반 미디어 시대를 이끈 TV방송 멘트뿐만 아니라 트위터 등 요즘 SNS에 쏟아지는 각종 말들을 연상시킴으로써 헛된 말, 미디어의 홍수를 표현하는 듯했다. 미술의 콜라주 기법을 음악으로 재현, 미디어아트를 보는 것처럼 음악인데도 선명한 미술적 이미지로 각인됐다.
로버트슨 지휘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아시아 초연한 윤이상의 ‘교향악적 정경’도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의 화풍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는 점에서 경계를 넘나든다. 첼리스트 한재민은 윤이상의 첼로 독주곡 ‘활주’에서 거문고 등 우리 악기의 음색을 들려줬으며, 온드레이 아다멕은 비디오아트와 현대음악이 종합된 ‘디너’를 통해 장르 구분을 의미 없게 만든다.
음악제 기간 공연장 복도에 전시된 양혜규 작가의 ‘융합된 분산의 연대기, 뒤라스와 윤’은 영화 ‘연인’의 원작자로 유명한 프랑스 문호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와 윤이상의 삶을 병치시키며, 동일한 시대를 산 예술가의 같으면서도 다른 삶을 조명했다. 올해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어서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김선욱 협연), 교향곡 1번 등 클래식도 관객과 만났다.
올해 음악제는 이렇듯 과거에서 현재로, 음악에서 미술로, 다시 문학 등으로 확장하고 이동하면서 문화적 다원주의를 보여준다. 다층적인 소리가 표현하는 현대사회의 이미지 또는 텍스트, 그들의 융합은 전쟁, 이념 갈등으로 인한 극단의 시대에 이해와 화해라는 화두를 던진다. 아쉬운 건 축제기간 또 색깔론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통영 거리에는 ‘종북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제’ 내용의 비방 현수막이 나붙었고, 개막일엔 공연장인 통영국제음악당 앞에서 스피커를 들고 고성방가하는 극우 시위까지 펼쳐져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960년대 대표적으로 부풀려진 공안사건이었던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적화공작단)사태에 연루돼 죽을 때까지 간첩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고국 땅도 밟지 못했던 윤 선생을 상대로, 사라진 줄 알았던 빨갱이 프레임이 과거 보수정권 이후 재등장한 것이다.
지난 21년간 단단히 뿌리내린 통영음악제가 소수 보수단체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겠지만, 갑자기 다시 등장한 색깔론에다가 10억 원이나 깎인 예산(작년 77억 원→올해 67억 원)을 보니 노파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지역을 넘고 아시아를 통틀어 이만한 규모와 수준의 현대음악제는 찾기 힘들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첼리스트 한재민 등 신성 발굴의 등용문도 된 음악제 아닌가. 그 어렵던 현대음악도 20년 가까이 통영음악제를 통해 접하니 이제 조금 친해졌다 싶은데, 공들여 쌓아온 문화 자산이 이념 논란에 더는 흔들리기를 원치 않는 이가 기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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