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바닷가 우체국
일광우체국은 바닷가 두번째 골목에 있다. 길모퉁이를 돌면 연파랑색 공중전화 부스와 빨간색 우체통이 나란히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 명의 직원이 일하는 작은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은 우편물 창구, 왼쪽은 금융 창구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고무장화를 신은 아주머니가 건어물을 들고 들어왔다. 상자에 건어물을 넣고 박스에 주소를 적느라 분주하다. 받는 사람은 상자를 열 때 바다 냄새와 바삭거리는 바닷가 햇살을 느낄 수 있겠다.
봉투를 저울에 올리면 직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주소를 입력하고 우편요금을 알려준다. 우편물에 日光(일광) 소인이 찍히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눅눅한 습기가 한순간 사라지는 느낌이다. 일광우체국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기대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사라진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우체국을 나서면 괜스레 콧노래가 나오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골목을 되돌아 나오다, 다시 파란 바다와 마주친다. 새파란 물빛에 이끌려 해안으로 간다. 완만한 해안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학리 방파제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산책로가 있다. 맞은편 해안에는 오리배가 여유롭게 떠 다니고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바다와 우체국은 나에게 그리움이다. 모래에 손끝으로 친구 이름을 적었다. 편지 봉투에 꾹꾹 눌러 적던 친구 집 주소로 엽서라도 보내볼까?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을까? 어쩌면 친구 집도 내 어릴 적 살던 집처럼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창군 진전면 이명리’. 바닷가 초록색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났던 친구 이름은 경선이다. 경선과 나는 11살에 편지 친구가 됐다. 전근을 가신 선생님 소개로 만났다. 편지는 서른 중반까지 이어졌다. 시골집에서 내 유일한 기쁨은 오토바이를 타고 방문하는 우체부가 들고 오는 편지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과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여자애들의 수다는 편지지 두 장을 넘어 열 장을 채울 때도 있었다.
십 대 시절 밤을 새워 써 내려간 편지에는 서로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치기 어린 고민으로 빈틈없이 매워졌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경선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또 읽고 있다며 서울로 대학을 갈 것 같다고 전했다. 서점으로 달려가 친구를 아프게 하는 책을 샀다. 그리고 밤을 새워 읽었다.
그해 여름 경선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요일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고3인 친구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한다고 했었다. 무작정 나선 길이었다. 결국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경선은 학교에 없었다.
그 후 우리는 길에서 마주쳐도 얼굴도 모르게 지나칠까 봐 사진을 주고받았다. 열한 살 아이가 열일곱이 되어 사진으로 만났다. 편지 봉투에 쓰는 주소도 달라졌다. 서울 대학 캠퍼스 주소를 적었다가 사 년 후 취업했다며 회사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결혼 소식을 전하고 주소가 바뀌었다. 그즈음 나와 경선은 각자 몇 번의 이사를 하는 사이 편지가 끊어졌다.
나는 때때로 경선을 떠올리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친구의 이름은 마법처럼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한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과 마당 가득 널어놓은 빨간 고추, 우체부를 기다리던 막막한 그리움. 열명 가족이 모여 살던 비좁은 시골집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마음의 친구.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낼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경선아 내 이름을 알아봐 줘. 그리고 연락해줘. 나는 너와 주고받았던 편지로 작가가 되었어.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오늘도 바닷가 우체국 골목을 걷는다. 그리고 내 친구 경선을 떠올린다. 문구점에 들러 꽃 그림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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