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산업기능요원’이라는 빈틈
지난 한 달 동안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주 69시간 근무제’가 아니었나 싶다. 고용노동부가 3월 6일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최장 노동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주가 맘대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없도록 노동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며 ‘노동시간의 자율성 회복’이라는 정책의 취지를 강조했다. 15%를 넘지 못하는 노동조합조직률이나 ‘노사 합의’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나는 그 ‘자율성’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는 곳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도 했던, 산업기능요원이라는 빈틈을 말이다.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전문연구원 제도와 함께 ‘병역자원 일부를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병무청장이 선정한 병역지정업체에서 연구 또는 제조·생산인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방위산업체뿐만 아니라 병역업체로 지정된 일반 기업에서도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군 복무라는 특이성만 제외한다면 산업기능요원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다. 노동관계법을 적용받는 것은 물론, 회사에 다른 노동자들과 차별 없이 업무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산업기능요원은 자주 군인과 비교되며, 병역을 빌미 삼아 과도한 업무 강도와 직장 내 괴롭힘에 쉽게 노출된다.
그렇다면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개인의 병역 혜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요구를 감수해야 하는 제도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개인이 아닌 기간산업분야의 지원사업에 가깝다. 본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인력수급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병역지정업체를 업종별로 나눈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1만 1084개의 업체 중 8484개의 업체가 ‘기간산업분야’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체의 77%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연구기관’에 소속된 인원들이 사실상 모두 전문연구원임을 감안한다면, 산업기능요원이 복무하는 대부분의 업체가 ‘공업’ 분야의 중소기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병역특례 폐지가 논의되던 2009년 당시, 산업기능요원제도를 활용하는 673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됐던 ‘2009년 산업기능요원제도 활용실태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도 폐지로 인한 인력공백이 생산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크다’ 44.2%, ‘크다’ 35.1% 등으로 참여 기업의 79.3%가 피해가 클 것으로 응답했다. 또한 산업기능요원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기업 94.4%가 존속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개인이 아닌 기업과 산업의 필요에 의해 유지된다. 산업기능요원은 일방적인 혜택을 받으며 기업의 요구를 감수해야 하는 ‘을’의 위치가 아니라, 엄연한 사회적 파트너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산업기능요원은 이미 직업교육과도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숙련된 노동자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업기능요원이 군 복무 해결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기업 선정에 대한 신뢰와 책임이 두터워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구는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본래의 취지 그대로 시행하자는 당연한 요구와 맞닿는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일부 기업의 잘못된 편견과 안일한 대응은 산업 전체의 발판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균형을 잃어버린 자율성은 한쪽의 피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 69시간 근무제’ 논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바람처럼 ‘자율성’이 지켜진다면 유연하고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봐야 하는 건 바람이 아닌 현실이다. 산업기능요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자율성이 억압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 어디인지, 정책과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어떻게 잃어버리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곳을 메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빈틈은 균열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발판을 스스로 무너트리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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