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누가 MZ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닌 걸로 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모든 정책을 MZ세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단어 ‘MZ’는 시장 트렌드 분석이나 미디어의 소비를 넘어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주 69시간 근로제와 국민연금 개편 논란에도 ‘MZ노조’ ‘MZ세대’ 등 MZ 프레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MZ가 호명되는 용례를 살펴보자. 능력주의 및 공정한 보상을 중시하는 세대로 특징지어지며, 청년담론을 한 차례 휩쓴 바 있다. 최근에는 양대 노총의 관행을 거부한다는 소위 ‘MZ노조’의 출범이 부각되기도 했다. 예능에서는 업무시간임에도 이어폰을 꽂고 일하는 버릇없는 캐릭터로 조롱받기도 한다. 다양하게 소비되기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개인주의’ ‘경쟁에 익숙함’ ‘개성 강함’ 등으로 정리할 수는 있다.
1990년생으로서,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에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MZ를 호명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어떤 기억’을 지우려 하거나, 심지어 새까맣게 잊은 것처럼 구는 것은 기가 차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다가 세월호에서 수많은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수영에 능숙한 학생이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지만, 개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양보한 사람은 살지 못했다. 단지 거리를 걷고 있었을 뿐인데, 행정과 안전 시스템이 붕괴된 탓에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디 그뿐일까. 청년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라에서 하루에 일곱 명은 산재사고로 퇴근하지 못한다. 반지하나 고시원에 산다는 이유로 재난의 위협 속에 시달려야 한다. 무책임한 국가의 방치 속에 아무런 잘못 없이 전세금을 날린 세입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회에서 가르쳐준 것은 개인주의나 개성이 아니다. 살아남으려면 나 혼자서라도 잘해내야 한다는 ‘생존본능’에 가깝다. 위협과 아픔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외면하는 공동체나 국가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 서글픈 사실은, 어디에 기댈 곳이 없어서 혼자 살아남기를 선택한 청년들에게, 정치가 버팀목이 되기보다 생존의 영역과 가장 관계없는 사람들만 ‘MZ’로 불러내서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고 있다.
MZ로 호명되는 사람들과 내가 기억하는 시간이 다르다면, 그냥 나는 MZ가 아닌 걸로 하겠다. 부모의 자산으로 자기 집을 소유하는 데 성공한 청년에게 반지하 침수나 전세금 미반환의 위협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것이다. 주 69시간을 일했으니 회사에 휴가를 달라고 요구하는 비정규직 청년은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청년과 무엇을 하고 싶다면, ‘어떤’ 청년인지부터 명확히 밝히자.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노동자, 깡통전세와 지옥고의 세입자, 비수도권 지역의 청년들을 빼놓고, MZ로 ‘퉁치는’ 것은 그저 철 지난 청년팔이에 불과하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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