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수신료 분리 징수 ‘정치적 꼼수’ 당장 멈춰야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초기, 전통적인 매체의 이용률이 높아졌다는 보고가 있다. 사람들이 위기 상황이 되자 신뢰할 수 있는 매체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매체의 정확한 정보는 위기 상황이 아니라 평소에도 매우 중요하다. 허위조작정보에 사고가 오염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세력에 경도되거나 장악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시민을 위해 제반 세력을 감시, 견제하는 언론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재원의 압박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공적 매체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다. 유럽 대다수 국가는 공영방송을 유지하고 그 매체들의 신뢰도가 높다. 정부 개입이 거의 없거나 정부 개입을 거부하는 내적 동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 내적 동력의 많은 부분이 재원 독립성에서 나온다. 주로 수신료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그 재원 결정에 특정 권력의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안타까운 것은 공영방송에서 이런 공적 재원의 비중이 적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그마저도 흔들려 한다. 수신료 분리징수 시도다.
여론조사 결과나, 대통령실 홈페이지의 지지자들 중심의 ‘국민참여 토론’의 찬반 투표 결과를 가지고 강행하려 한다. 세금을 덜 낼지 더 낼지 국민여론을 물어보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다고 그 결과에 기대서 공적 가치 구현에 필요한 세금의 납부를 자율로 한다고 결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영방송 흔들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친정권 인사들을 다수의 공영방송 이사로 임명하고, 낙하산식 사장 임명을 통해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인들을 현장에서 축출했다. 그 결과 공영방송이 정체하고 지금도 그 상흔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공영방송의 재원을 압박하는 것은 또다시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공영방송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이제는 다시 소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영방송은 독립적으로 사회 제 세력을 비판, 감시하고 공적 가치가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재원을 압박하는 것은 이런 책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의미다.
정부는 왜 이런 일을 벌이려 할까? KBS의 소수노조인 KBS 노동조합은 ‘현 경영진이 물러나면 수신료 분리징수를 시도할 필요 없다’는 것이 여권의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이나 여당이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속내를 읽은 것일 게다. 미디어스에 따르면 배승희 변호사 채널에 출연한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선거에 이기려면 수신료 분리징수에 찬성 투표하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민 편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공영방송 장악 의도임을 드러낸 것이다.
현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해 왔다. MBC를 향한 일련의 공격은 물론 KBS의 장기 감사,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와 검찰 수사, 방송통신위원장 사퇴 압력과 구속 기도 실패 등이 그것이다. 준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YTN의 ‘사영화’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을 장악하거나, 공영방송을 해체하려는 정권의 시도가 이어진다. 시민사회 진영이나 학계는 공영방송 책무를 구체화하고 그에 필요한 재원 안정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움직이지 않았고, 현 정권은 더 나아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한다. 프랑스에서는 방송을 다 사영화했다가 그 폐해를 막기 위해 공영방송을 다시 설립한 전례가 있다.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른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 우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정부·여당은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정치적 꼼수의 시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민주당은 분리징수 저지는 물론 YTN 사영화 저지, 공영방송의 독립적인 재원 마련에 필요한 제도 개선에 책임감을 갖고 적극 나서야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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