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정자교 붕괴, 시설물 안전관리 보완하는 계기 되길

경기일보 2023. 4.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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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빗속에 우산을 쓴 한 사람이 다리 보행로를 걸어가는 가운데 보행로가 갑자기 우측으로 기운다. 순식간에 보행로 전체가 붕괴하고, 이 사람 역시 우측으로 넘어지면서 사라진다. 바로 얼마 전 발생한 분당 정자교 붕괴사고의 충격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 내용이다. 이번 사고의 구체적 원인은 차후 밝혀지겠지만 근본 원인으로 시설물 안전관리체계의 허점이 지적되고 있다.

분당 정자교는 ‘시설물안전법’ 관리 대상인 제2종 시설물이다. 제2종 시설물은 정기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 실시가 의무화돼 있다. 이에 따라 분당 정자교는 지난해 11월 정기안전점검 ‘양호’ 등급, 2021년 5월 정밀안전점검 C(보통) 등급으로 판정됐다. 당해 등급은 경미한 결함이 있지만 사용 가능한 수준을 의미한다. 양호한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2명의 사상자가 난 분당 정자교의 상태가 사용 가능한 수준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올해 1월에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도림 보도육교가 내려앉았다. 이 역시 ‘시설물안전법’ 제3종 시설물로 지난해 12월 A(매우 양호) 등급을 받은 바 있다. 일련의 붕괴사고는 시설물 안전관리체계의 핵심인 점검·진단 신뢰성 문제, 즉 부실 점검·진단이라는 고질적 병폐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시설물 부실 점검·진단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중 저가계약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을 듯하다. 202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주된 점검·진단의 86.6%인 14만5천건이 ‘안전점검 등 비용산정기준’에 못 미치는 저가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발주의 경우 기준 대비 70% 미만으로 계약된 건이 전체의 72%에 달했고 50% 미만도 절반이 넘었다. 민간발주는 더 심각해 전체 발주 물량의 83%가 기준 대비 10% 미만의 금액으로 계약되고 있다. 저가계약은 부실 점검·진단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공공의 안전을 저해하는 위험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한편 부실 점검·진단의 원인은 산업계 내부 에도 있다. 시설물 점검·진단시장은 성장세에 비해 업체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로 인해 과당경쟁 및 상위 소수업체의 수주 편중이 심화된 상태다. 이는 저가계약이 관행으로 고착화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내실 있는 점검·진단을 위해 무엇보다 저가계약에 관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시설물 점검·진단 및 유지관리산업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영세한 중소기업의 내실화를 도모하고 건실한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구축해야 한다. 또 기술자 역량 강화와 신규 인력 양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더욱이 신기술 도입을 통한 시설물 안전관리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육안관찰’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점검 방식은 신뢰도가 낮고 다수의 시설물을 점검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실 점검·진단의 근절은 처분 강화와 점검체계 변경, 신기술 활용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발주자 인식 개선과 충분한 예산, 건전한 산업구조와 함께 사회적 인식 변화와 공감대 형성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분당 정자교 붕괴사고가 부실 점검·진단을 해결해 시설물 안전관리체계의 빈틈을 보완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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