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생각 나가기
상자가 이렇게 크게 접힐 줄 몰랐다
다 채우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 생각까지 다 담았다
막상 넣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붉은 갈대숲 그물이 쳐진 호수 붕어를 잡는 순간 서성이고 어색한 표정 늘 짝다리 짚는 너의 모습
테이프로 붙여도 터질 때가 많아요
괜찮아요, 깨지는 건 없어요
상자를 접는다
더 넣는다고 무너질 일 없겠지
몸보다 큰 생각을 몸도 버티고 있으니까
유수연(1994~ )
시인은 첫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의 ‘생각’ 연작시에서 생각을 담그고, 만지고, 밝히고 연습한다. 시 ‘생각 담그기’에서 “주워 담을 수 없는 건/ 놓은 후에 잡고 싶어”진다고 했다. 헤어진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사랑하는 너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엿보인다. 후회와 미련도 남아 있다. 잊으려 할수록 생각은 더욱 또렷해진다. 이 시는 작별 후 너의 물건을 싸서 택배로 보내는 상황이다. 직접 대면하기 싫으니 물건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을 것이다.
택배 상자를 접어 물건을 집어넣는다. 만난 세월에 비해 담을 게 별로 없다. “다 채우지 못”해 허전한 기분이 든다. 함께한 세월도 스쳐 지나간다. 추억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붉은 갈대숲 그물이 쳐진 호수 붕어를 잡는 순간 서성이고 어색한 표정 늘 짝다리 짚는 너의 모습”만은 택배로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터지고 깨지는 건 상자가 아닌 슬픈 마음이다. 괜찮지 않다. 너의 빈자리가 크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틴다. 슬픔은 누를수록 커진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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