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92] 청운서당(靑雲書堂)의 사연
3년 전 장성군 축령산 자락에 있는 필자의 공부방이었던 ‘휴휴산방(休休山房)’에 불이 났다. 불은 ‘유(有)’를 순식간에 ‘무(無)’로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불이 나서 휴휴산방 현판도 불에 타 버렸다. 묘한 점은 불이 나기 한 달 전쯤에 산방에 불이 나는 꿈을 꾸었다는 점이다. 가재도구를 꺼내 바로 옆의 똑같은 쌍둥이 집으로 옮기는 장면의 꿈이었다.
불나는 꿈은 보통 길몽으로 보지만 가재도구를 꺼내는 장면이 웬지 좀 꺼림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검게 타버린 건물을 보면서 기분이 안 좋았다. 영암의 월출산 자락 주지봉(朱芝峰)이 바라다 보이는 구림마을로 이사를 갈까? 주지봉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를 배출한 호남 최고의 문필봉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의치 않아서 다시 원래의 불난 집을 수리하게 되었다. 현판도 ‘청운서당(靑雲書堂)’으로 바꾸기로 했다. ‘쉴 만큼 쉬었으니까 이제 서당에서 공부하자!’
청운서당 글씨는 도산서원 김병일 원장께서 한학의 대가인 실재 허권수(71) 선생에게 귀띔하였다. 결국 실재 선생이 직접 써서 현판까지 만들어 주었다. 구한말 노사 기정진, 면우 곽종석, 중재 김황, 연민 이가원을 잇는 한학의 장문인이다. 남명학, 퇴계학, 율곡학에 정통하다. 장서만 7만권을 보유하고 있다. 군대 일등병 시절에 2만4000자 한자로 된 율곡행장을 머릿속에 줄줄 외우고 있다가 상관인 중대장에게 한문을 가르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중대장이 제자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청운서당 현판 글씨를 본 문화계의 원로이자 ‘축사의 달인’인 김종규(84) 선생이 방 안에다 걸어 놓을 편액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김종규는 정종섭 선생에게 부탁하였다. 필자가 좋아하는 문구인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공부는 진공묘유에 있다. 정종섭은 장관, 국회의원도 했지만 그것 보다는 경주에서 명필로 유명한 정사부(鄭師傅) 집안의 후손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명필이다. 불교 사찰의 굵직한 대웅전 현판 글씨 써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서각(書刻)은 누가 하나? 김종규 선생이 논산에 사는 서각장 김재유(62)를 소개하였다. 20년 넘게 서각을 해온 장인이다. 나무판자에 글씨를 새길 때마다 어떤 희열이 느껴진다는 사람이다. 50년 된 은행나무 판자에다 글씨를 새기고 나무 바탕에는 단청할 때 쓰는 밤색 안료를 칠했다고 한다. 밤색 안료가 무게감을 준다. 글씨는 흰색 아크릴을 썼다. 사람 사는 게 씨줄 날줄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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