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삼성의 ‘처음’이 던지는 경고
“현실감이 없을 지경이지, 이런 충격은 또 처음이라.”
주말 사이 대화를 나눈 여러 삼성전자 직원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처음’이라는 단어를 쏟아냈다. ‘입사 후 처음으로 회사의 미래가 불안해졌다’ ‘처음으로 1등이 아닌 삼성을 상상해봤다’ 같은 말도 나왔다. 반도체 불황 여파로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4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을 밑돌았다. 한 직원은 “지난 연말에 프린트 용지까지 아끼라는 회사의 말에 반발심이 일었는데, 지금 진행 중인 연봉 협상에서 인상률이 역대 최저로 결정돼도 이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충격적인 ‘처음’은 또 있다. 반도체 부문에서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감산에 나선 것이다. 감산 대상은 역대 최악의 수요 절벽에 시달리는 D램으로, 삼성전자가 지난 1992년부터 단 한 번도 시장점유율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품목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감산은 시장점유율을 두고 하는 도박”이라 한다. 극약 처방이란 뜻이다. 생산을 줄이면 당장의 적자 폭은 줄일 수 있겠지만, 수요가 회복될 때 공급 물량이 부족해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위험이 높다. 한 번 밀린 시장점유율은 되돌리기가 어렵다. 삼성 내부 사정을 아는 한 증권가 고위 인사는 “삼성 고위층에선 어려움 속에서도 생산을 유지해 다음 ‘업턴’에서 경쟁사들과 격차를 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결국 위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2등 기업’이 될 수도 있다. 뒤를 바짝 따라오던 대만 TSMC가 상대적으로 호실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올 1~2월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주가 늘어나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4% 늘었고, 올 1분기에만 10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은 2분기에도 1분기와 비슷한 수준의 적자가 예상되는 데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빨라야 하반기에나 풀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TSMC의 매출 격차는 6조원(지난 1월 12일 환율기준)이 넘었지만, 올해는 그 격차가 줄다 못해 역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토록 휘청거리는 삼성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라 경제에도 처음 겪는 경고 사인들이 넘쳐난다. 올 1~2월 경상수지는 반도체 직격탄으로 11년 만에 처음으로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경기 후퇴 영향으로 4년 만에 처음으로 세수 펑크 위기를 앞뒀고, 앞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역시 시간문제다. 제아무리 K팝·K드라마가 성공해도 제조업이 흔들리니 한국 경제는 퍼펙트 스톰을 겪고 있다. 핀란드는 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했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침체된 경제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 겪어보는 삼성전자의 위기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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