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김연경의 마지막 도전
챔프결정전 패배 후 再도전 선언
투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와
한 번 졌다고 아직 끝이 아니다
한국 여자배구 ‘여제(女帝)’로 불리는 김연경(35·흥국생명) 무릎엔 연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코트에서 훨훨 날아다니게 하는 건 승부욕이다. 그녀는 2006년 고교를 마치고 프로에 데뷔한 신인(新人) 시절, 신인왕 최우수선수(MVP),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를 휩쓸었다. 이제 막 프로 세계에 입문한 10대 선수가 첫해 압도적 기량을 뽐내며 팀을 우승까지 시킨 건 국내는 물론, 아마 세계 프로스포츠사(史)에도 없는 진기록일 것이다. 그해 프로야구에서 류현진(36)이 신인왕·MVP를 동시 석권했지만 팀에 우승 반지를 안겨다 주진 못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그녀는 곧바로 무릎 연골 파열 판정을 받고 지루한 재활과 수술을 3년 반복한 끝에 다시 일어섰다. ‘과연 내가 전처럼 다시 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배구에 대한 열정과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부상 이후 간간이 나타나는 통증, ‘무릎이 다시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정신적 위축감에 시달렸지만 코트에 나서는 순간, 그녀는 모든 걸 잊는다. 오로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고 싶다’는 집중력이 고통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셈이다.
미 프로야구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은 “필사적인 노력 속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은 교착 상황에서도 묘수를 찾아나간다는 믿음이다. 스포츠 지도자들은 타고난 재능이 남다른 선수들이 분명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 남다른 재능을 완성시키는 열쇠는 정신력이다. 정신력은 사실 근면성이나 성실성의 다른 말이다. 어떻게든 살아나가겠다는 갈망이 야구에선 출루율과 타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김연경은 선수 생활 내내 숱한 고비를 단호한 의지로 돌파했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이 4강에 오르기까지 그녀는 후배들을 붙잡고 틈만 나면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고 외쳤다. 주축 선수 3명(이재영·이다영 자매와 김해란)이 빠져 만신창이가 된 한국 팀(당시 세계 14위)이 세계 4위(터키), 5위(일본), 6위(도미니카)를 차례로 격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그녀는 중국 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6년 배구 인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춤(Last Dance)’을 모국에서 맞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전년도 6위였던 친정팀(흥국생명)을 정규리그 1위에 올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상대(도로공사)를 2연승으로 몰아붙이며 통합 우승에 1승만 남겼다. 지난 1월 팀 감독과 단장이 구단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가 갑자기 해임되는 등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도 다잡으며 나아간 성과. 이제 화려한 피날레와 더불어 평소 은퇴 후 그리던 미국에서의 지도자 수업, 기회가 되면 도전하고 싶다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법했다.
그런데 그 뒤 거짓말처럼 3연패하며 주저앉았다. 여자배구 챔피언결정전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2연승 후 3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긴 당사자가 돼버렸다. 울화와 허탈감에 눈물을 흘릴 법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애쓴 동료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마지막 도전을 다시 펼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투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잘 풀릴 때 투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투지란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다. ‘계속 해봐야 진 경기인데 그만 할게요’라는 선수는 없다. 미래는 불안하지만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인생이란 경기도 그렇다.” 책 제목은 ‘아직 끝이 아니다’이다. 김연경의 도전도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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