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갈등 정점 ‘간호법’…내용은 정작 ‘빈수레’
업무 범위·권리·처우개선 규정, 기존법 정리에 그쳐 ‘모호’
의협 편에선 대통령도 갈등 원인…간협 “반쪽짜리 보완을”
오는 13일 본회의 표결을 앞둔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의료 직역단체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파업’을 예고했고, 대한간호협회(간협) 등 간호계는 간호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 시위를 진행 중이다.
간호계는 간호법을 따로 제정해 간호사의 전문성을 살린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간호사의 근무 환경 등 처우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타 직역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한다.
간호법 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구두로 약속한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한간호협회를 찾아 “간호법 제정이라는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달 23일 본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안건으로 가결돼 언제든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오는 13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통과가 유력하다. 관건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윤 대통령은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첫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시사했다.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은 정점에 이르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의협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 8일 총파업을 결의하며 “법안이 통과되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간협 등 간호계는 간호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며 연일 국회 앞에 집결하고 있다.
간협은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간호 업무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빠른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간호’에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 대상 방문건강관리, 가정간호,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넓어졌는데, 이러한 지역사회 기반의 간호 업무를 낡은 의료법은 담지 못한다는 게 제정 취지다. 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타 직역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한다. 본회의에 부의된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권리·책무를 규정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시하고 있지만 모두 추상적이다. 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현장에서 당장 변화가 일어나기 쉽지 않다.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10~12조는 대부분 기존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간호사 업무와 관련해 흩어져 있던 조항을 옮겨 합친 것이다. 21조엔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내용이 담겼지만 국가와 지자체, 간호사를 고용하는 기관 등이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게 전부다.
간호법 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도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은 더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간호법을 반대하는 직역 단체들은 실질적인 조항이 없는 제정안이더라도 일단 통과하면 이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독소조항들이 추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간협 측은 제정안 통과 후 시행령 등 하위 법령 제정을 통해 현재 반쪽짜리인 제정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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