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청부살인
영화 <길복순>의 배경은 청부살인 대기업 ‘MK엔터’이다.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忍) 세 번을 면한다”고 회사 대표는 말한다. 킬러들은 기존 <레옹> <존 윅>을 비롯한 대중문화 상품에서처럼 미화된다. 그러나 돈과 살인이 교환되는 위험천만한 실제 현실은 비루할 뿐이다.
청부살인 의뢰인들은 상대방만 세상에서 없어지면 문제도 사라질 것으로 여긴다. 1996년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대낮에 주부가 피살된 사건은 50억원의 위자료를 놓고 이혼소송 중이던 재력가 남편이 국제 갱단에 사주한 경우였다. 2002년 한 중견기업 회장의 부인이 망상에 빠져 무고한 사돈 조카 이화여대생을 공기총으로 살인토록 교사한 사실은 피해자 유족의 끈질긴 조사 끝에야 뒤늦게 드러났다. 2014년에는 금품수수 사실이 폭로될 것을 우려한 현직 서울시의원이 재력가의 살인을 교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8년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70대 노인 강도피살 사건은 돈문제로 남편과 다툰 부인이 지인에게 살인을 청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3년 사귄 여자친구를 “집착이 심하다”며 청부살인한 남성이 술자리에서 떠벌려 붙잡힌 경우도 있다. 대다수의 청부살인은 갈등 해결 능력이 턱없이 미숙한 이들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평균적 인간이라면 살해에 따른 죄책감은 정신질환에 이를 정도로 무겁다. 그러나 돈을 좇느라 윤리가 마비된 이들은 살인마저 불사한다. <살인의 심리학> 저자 데이브 그로스먼은 “인간의 죽음과 고통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도록” 만드는 폭력적인 게임과 잔인한 미디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살인이 점점 대수롭지 않은 일이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납치·살인 사건의 범인 3명이 9일 구속 송치됐다. 대가로 “3억원쯤 받기로 했다”고 한다. 배후로 지목된 부부는 피해자 권유로 투자한 가상자산 시세가 폭락하자 앙심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돈 잃었다고, 돈 받았다고 사람을 죽이는 배금주의라니 ‘MK엔터’가 실존한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돈만 있으면 남의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는 사회라면 그 누구도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청부살인 범죄는 관용 없이 엄단해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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