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의 재판 결석... ‘사회정의 실현’ 내팽개쳤나 [만물상]
2006년 어느 시민이 재산세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서울 광진구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런데 구청이 선임한 변호사는 세 차례 변론 기일에 나오지 않았고 증거자료를 내라는 법원 요청도 따르지 않았다. 법원은 구청에 패소 판결을 내렸고, 판결문 두 쪽에 걸쳐 변호사의 ‘불성실 변론’을 비판했다. “행정청의 대리인이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판사도 이랬을까 싶었다.
▶5년 전쯤 어느 기업 임원이 대학 친구인 변호사에게 자기 회사 관련 사건을 맡겼다. ‘누이 좋고 매부 좋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재판에 두 번이나 불출석했고, 결국 회사가 소송에서 완패했다. 변호사의 해명이 가관이었다. “전날 과음해서.” 이 임원은 회사에서 잘릴 뻔할 위기를 겨우 넘겼다.
▶형사소송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적지 않다. 2010년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1년간 형사재판을 본 뒤 보고서를 만들었다. ‘판사는 피해자 아픔에 냉담했고, 검사는 불성실했으며, 변호사는 지각하기 일쑤였다’는 데 대체로 일치했다. 그런데 판·검사와 달리 변호사를 긍정 평가한 보고서는 단 한 장도 없었다. “지각은 예사이고 재판에 불출석해 피해자를 헛걸음시키기도 했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지난해엔 영장실질심사에 불참하고 해임된 이후에도 수임료 반환을 거부한 변호사가 대한변협에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을 한 학생의 유족이 가해 학생들을 상대로 낸 소송을 대리하면서 재판에 불출석해 소송이 취하되게 만든 권경애 변호사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는데 권 변호사가 세 차례 항소심 변론기일에 나가지 않아 이런 황당한 일이 생겼다. 민사소송법상 소송 당사자가 연이어 3번 출석하지 않으면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권 변호사는 “불찰”이라고 했다지만 유족 입장에선 땅을 칠 노릇이다. 대한변협은 징계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사건 당사자 입장에선 변호사의 불성실한 변론도 참기 어려운데 재판 불출석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여느 전문직과 달리 변호사법은 ‘사회정의 실현’을 첫머리에 내걸고 있다. 변호사가 그저 돈만 좇는 ‘법률 기능공’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대한변협 변호사 윤리장전엔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성실해야 한다는 성실 의무 규정도 있다.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은 그런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2008년부터 ‘법관 평가’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변호사 평가’를 하자는 말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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