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목엔 아버지 유언이... 마스터스 골프 ‘아마추어 돌풍’

오거스타/민학수 기자 2023. 4. 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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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학수의 마스터스 라이브] 대학생 베넷, 3R 6홀까지 3위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걸 느낄 수 있죠. 잘 보이는 곳이라 짜릿하실 것 같아요.”

아버지 유언을 왼쪽 손목에 문신(노란 점선안)으로 새긴 샘 베넷. /로이터 뉴스1

이번 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아마추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학생 골퍼 샘 베넷(23·텍사스 A&M대학교)은 클럽을 잡을 때마다 왼 손목에 새긴 문신을 바라본다. “(뭔가를 하려면) 머뭇거리지 마라(Don’t wait to do something).”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유언 같은 당부다.

8일(현지 시각)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2라운드까지 그는 브룩스 켑카(33·미국)와 욘 람(29·스페인)에 이어 3위(8언더파)를 달렸다. 대회는 엄청난 비바람 속에서 전날 악천후로 마치지 못한 2라운드 잔여 경기에 이어 3라운드에 돌입했지만 다시 악천후로 선두 그룹이 6홀을 마친 상황에서 다음 날로 차례로 밀렸다. 베넷이 거둔 2라운드까지 성적은 1956년 켄 벤투리가 기록한 역대 아마추어 2라운드 최고 9언더파 135타와 1타 차이다.

그의 아버지 마크는 알츠하이머로 8년간 투병하다 2021년 6월, 53세로 생을 마감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생의 조언을 간청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힘겹게 알파벳을 한 글자씩 떠올리며 15분 걸려 문장 하나를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내려갔다. 그게 “Don’t wait to do something”이었다. 날짜는 2020년 6월 12일. ‘아빠(pops)’라는 사인도 함께였다. 베넷은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혹시나 잊을까 손목에도 문신으로 새겼다.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가 되는 새로운 세상의 문이다. 그는 샷이 흔들리고 각오를 다질 때마다 왼 손목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만의 ‘프리 샷 루틴(샷을 하기 전 반복적으로 하는 동작)’이다.

샘 베넷(왼쪽)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투병 중 삐뚤빼뚤한 글씨로 “(뭔가를 하려면) 머뭇거리지 말라(Don’t wait to do something)”는 조언을 아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베넷은 이를 손목(오른쪽)에 새겼다. /로이터 연합뉴스·PGA 투어

베넷은 지난해 US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에서 우승해 마스터스 출전권을 받았다. 1~2라운드를 세계 1위이자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자 스코티 셰플러(27·미국)와 동반 경기했다. 주눅 들지 않고 2라운드까지 공동 28위(1언더파)에 그친 셰플러를 압도했다. 1라운드에서는 보기 하나 없이 이글 1개, 버디 2개로 4언더파, 2라운드에서는 버디 5개, 보기 1개로 역시 4언더파를 쳤다.

그는 “아버지는 결과에 집착하는 골퍼 대신 80타를 치더라도 과정에 충실한 골퍼가 되고 주변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신사가 돼야 한다고 하셨다”며 “오거스타 내셔널을 걷는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실 것 같다”고 했다. 베넷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치러진 US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 결승에서 36홀 매치플레이 끝에 1홀 차 극적 승리를 거두고는 마스터스 출전 자격을 따냈다. 우승 후 아들이 마스터스 대회에 서는 걸 보고 싶어 했던 아버지를 기리며 울먹였다.

기상예보대로 올해 마스터스는 악천후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3라운드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두는 브룩스 켑카. 2라운드까지 12언더파를 달리다 3라운드 6번홀(파3)까지 13언더파를 기록, 같은 조 욘 람(9언더파·스페인)을 4타 차로 따돌렸다. 베넷이 6번홀까지 2타를 잃어 4언더파로 3위. 3라운드 경기는 많은 비로 54명 전체 선수 중 한 명도 라운드를 마치지 못했다. 9일 3라운드 잔여 경기와 4라운드를 치르게 됐다.

‘코리안 브러더스’ 4명은 모두 2라운드까지 상위 50위(공동 순위 포함)까지 허용하는 컷(cut)을 통과해 3라운드에 진출했다. 마스터스에서 한국 선수 4명이 컷을 통과해 3라운드에 진출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2011년(최경주, 양용은, 김경태)과 2020년(임성재, 강성훈, 김시우) 3명이 가장 많았다. 3라운드 중간 집계에선 이경훈(32)과 김시우(28), 임성재(25), 김주형(21) 네 명 모두 이븐파로 공동 28위에 자리 잡았다. 타이거 우즈(48·미국)는 2라운드까지 3오버파 147타 공동 49위로 컷 턱걸이에 성공했다. 마스터스 23회 연속 컷 통과 기록. 프레드 커플스(64·미국), 게리 플레이어(88·남아공)와 동률이다. 우즈는 3라운드 7개 홀에서 더블보기 2개, 보기 2개를 쏟아내며 6타를 잃고 중간 합계 9오버파를 기록하고 있다. 컷을 통과한 54명 중 최하위. 1959년생인 프레드 커플스(미국)는 2라운드까지 1오버파 145타를 기록, 공동 40위로 3라운드에 진출해 최고령 컷 통과 기록을 세웠다. 이전은 2020년 베른하르트 랑거(독일) 63세 78일. 커플스는 63세 18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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