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낙태약' 미 연방법원 간 엇갈린 판단… 다시 불붙는 '임신중지 전쟁'
텍사스주 연밥법원 "FDA 승인 취소" 결정에
워싱턴주 연방법원선 "사용 승인 변경 안돼"
대선 앞두고 공화·민주 간 정치 쟁점 떠올라
미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인 '임신중지 전쟁'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먹는 낙태약'에 대해 연방법원 간 엇갈린 판단이 나온 탓이다. 텍사스주(州) 연방법원이 지난 23년간 시판된 임신중지약 판매를 금지한 반면, 워싱턴주 연방법원은 '현상 유지' 결정을 내렸다. 동일 사안에 대한 사법부마저 상반된 주문을 내놓자 그 여파는 정치권으로도 번지는 모습이다.
"낙태약 판매 금지" vs "판매 유지"... 엇갈린 법원 판단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 애머릴로 연방법원의 매슈 캑스머릭 판사는 전날 먹는 임신중지약 '미프진'의 주요 성분인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 전역에서 미페프리스톤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은 '보수 우위'로 재편된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6월 임신중지권을 폐기한 이후, 이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평가다.
그러나 같은 날 곧바로 토머스 라이스 워싱턴주 스포캔 연방법원 판사는 "FDA는 미페프리스톤의 사용 승인을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민주당 우위의 17개 주가 제기한 별도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한 것으로, 미페프리스톤 판매가 계속돼야 한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로써 임신 10주까지 사용 가능한 임신중절 약물 미페프리스톤은 미국 정치권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특히 보수 기독교 법률 단체에 참여했던 캑스머릭 판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라이스 판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다. 담당 판사마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표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념 대결 최전선에… 결국 대법원서 '교통 정리'될 듯
두 연방법원의 상충된 결정은 지난해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른 귀결이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 임신중지가 가로막히자, FDA는 올해부터 일반 소매 약국에서도 먹는 임신중지약 판매를 허용하면서 그나마 접근권을 보장했다. 이에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지난해 11월 텍사스주 연방법원에 "FDA의 미페프리스톤 판매 승인을 철회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캑스머릭 판사는 보수주의자들의 바람대로 "FDA가 미페프리스톤의 위험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사용 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NYT는 "판결문에서 태아를 '태어나지 않은 인간'으로, 미페프리스톤에 대해 '태아를 죽을 때까지 굶주리게 만든다'고 언급하는 등 사법적 견해보다는 임신중지 반대 활동가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을 인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주 연방법원 결정으로 임신중지 전쟁은 확전으로 이어지게 됐다.
다만 미페프리스톤 접근이 당장 막히는 건 아니다. NYT는 이같이 전하면서 "FDA가 약물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판매 금지를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할 권한이 있고, FDA의 공식적 결정이 없는 한 임신중지약물 제공자들은 미페프리스톤을 계속 처방·조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법무부도 텍사스주 법원 판단에 즉각 항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역시 성명을 내고 "여성의 자유를 박탈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전례 없는 일"이라며 "법원 결정을 뒤집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미 공영 NPR방송은 "하급법원 간 충돌에 결국 연방대법원이 나서 '교통 정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분간 미페프리스톤을 둘러싼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때리기 나선 민주당… 공화당은 침묵
민주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민주당의 패티 머레이 상원의원(워싱턴)은 "텍사스주 법원 결정은 미 전역에서 어떻게든 임신중지를 금지하려는 공화당원들의 수십 년간 노력의 결과"라고 직격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언급을 꺼리고 있다.
이는 지난 1년간 임신중지를 둘러싸고 달라진 정치 지형을 반영한다. 지난 4일 위스콘신주 대법관 선거에서도 임신중지 찬성을 적극 내세운 재닛 프로터세이위츠 판사가 '예상밖 압승'을 거뒀다. 위스콘신 마켓대 로스쿨이 실시한 지난달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7%가 연방대법원 판결에 반대했다. WP는 "양당 전략가들은 임신중지 금지에 대한 분노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패배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보고 있다"며 "민주당은 이를 공화당 대선 후보들에 대한 공격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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