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삼성의 `반도체 三分之計` 통할까
삼성전자가 "의미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며 사실상 인위적 감산을 공식 선언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천하 삼분지계'를 지키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는 1998년 25% 감산 이후 25년만에 처음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고 부담도 이유지만, 과거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무릅쓰며 경쟁하는 게임) 때처럼 버티다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함께 구축한 소위 '3강 구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만 생산하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달리 스마트폰과 가전,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사업군을 가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에서 발생한 3조~4조원 안팎의 영업적자를 스마트폰이 만회해 준 덕에 그나마 1분기에 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율과 미세공정을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로선 경쟁사들이 무너질 때까지 감산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07년 세계적인 반도체 증설 경쟁이 벌어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독일의 키몬다가 2009년 파산했으며 파워칩, 난야 등 대만 업체들도 파산 직전까지 몰린 바 있다. 당시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17년 영업이익률 50% 안팎에 이르는 역대급 '초호황'을 누렸다. 만약 이번에도 삼성전자가 적자를 감내하고 버티는 전략을 택했다면 조만간 재현될 두번째 '초호황'을 독식할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반도체는 이제 IT(정보기술)를 넘어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제품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이 됐다. 여기에 챗GPT로 불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메모리 시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이번 감산 발표는 두가지 포석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차세대 제품(DDR5)으로의 전환 시점이 다가왔다는 점이다. 메모리 주력 제품인 D램의 경우 서버용 매출 비중이 30%를 상회하는데,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인텔이 신형 '사파이어래피즈'를 출시하면서 DDR5를 지원하도록 한 만큼 시장의 중심축이 빠르게 차세대 제품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잠정실적 발표 자료에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DDR4 제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으로선 이번 감산을 통해 DDR4의 경우 기존 재고를 중심으로 수요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DDR5로 신속히 전환함으로써 내년 이후 시장에 자연스럽게 대비할 수 있다.
다른 한 이유는 현 메모리 3강 구도를 깨는 게 삼성전자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3강의 나머지 한 축이 흔들리면 중국 업체들이 끼어들 틈이 생긴다.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이에 세계 각국 정부는 독보적 1위인 '삼성전자 흔들기'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칠 수 있다. 삼성과 SK, 마이크론은 세계 D램 시장의 9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고객은 3명(기업)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계속 게임을 하면 다운사이클(경기불황)에서 공급이 초과해 가격이 내려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과정을 겪는다"고 밝혀 삼성에 대한 불만을 우회 표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감산 발표 전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전 분기 대비 20% 떨어지고, 2분기에도 10∼15%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 2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1분기 적자는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고금리와 경색된 자본시장 등의 여건을 고려하면, SK하이닉스가 치킨게임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이번 전략적 감산 결정은 'K-반도체'의 위상을 지키면서 미국 업체인 마이크론의 생존 가능성도 높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경쟁사들과 공생하면서 동시에 한·미 반도체 동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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