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로 압박하자… 중국은 희토류로 응수 [글로벌 리포트]
中 수출규제 항목에 '희토류 자석' 검토… 본격 무기화 나서
전기차·로봇 등 첨단산업에 군사 장비 핵심부품으로도 쓰여
日매체 "고성능 자석 생산공장 없는 美·유럽의 공급망 통제
성장 기대되는 환경분야 패권, 중국이 거머쥐려는 것" 분석
반도체와 희토류 모두 국가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국 갈등이 격화될수록 상호 타격은 불가피하다. 반도체 강국이지만 미국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데다, 희토류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고래 싸움의 유탄을 피하기 어렵다.
■희토류 반격 준비해온 中
중국이 희토류로 미국에 반격하려는 움직임은 일찌감치 감지됐고, 조금씩 진행돼 왔다. 미국이 반도체와 첨단기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중국 제재하기 시작할 즈음인 2020년 희토류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수출통제법이 시행됐다. 이듬 해 말엔 중국알루미늄그룹, 중국우쾅그룹, 간저우희토그룹 3곳의 사업을 통합한 다음 철강연구과학기술그룹, 비철금속과학기술그룹 등 연구기관 2곳을 영입해 중국희토그룹을 탄생시켰다. 이 회사는 희토류 중에서도 핵심인 '중희토류'의 세계 최대 생산 업체다.
이보다 앞서 2016년엔 6개 기업을 합친 베이팡희토를 만들었다. 경희로류 중심의 이 업체 역시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중국은 표면적으론 희토류 관리 강화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은 미국의 압박에 버티기 위한 조치로 결을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부턴 실질적인 희토류 보복의 사전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 등은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희토류의 정제·가공 기술을 포함시켰고, 수정안 의견 수렴(2022년 12월30일~2023년 1월28일)을 끝냈다.<본지 2월19일자 보도>
외신이 우려했던 희토류 기술 수출 차단이다. 수정안의 핵심은 수출금지 항목 11호에 추가한 △희토류 추출·분리 공정기술 △희토류 금속 및 합금 재료의 생산기술 △사마륨코발트, 네오디뮴철붕소·세륨 자성체 제조기술 △희토류 붕산산소칼슘 제조기술 등이다.
사마륨코발트는 희토류계 원소인 사마륨과 고가의 전략 자원 중 하나인 코발트의 합금이다. 사마륨코발트 자석은 희토류를 원료로 하므로 현존 자석 중 가격이 가장 비싸며, 중국 생산량은 70%이상이다. 중국은 사마륨과 코발트 희토류 금속을 추출하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또 네오디뮴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희토류 자석의 주요 원료이며 네오디뮴철붕소 자석은 중국 생산량이 85%에 달한다. 전기차, 태양광·풍력 발전, 스마트폰을 비롯한 소비 전자 제품, 산업용 모터, 로봇, 첨단 무기 등에 모두 이 같은 사마륨코발드와 네오디뮴 영구 자석이 들어간다. 굳이 희토류로 합금을 만드는 것은 쉽게 부서지는 희토류 원소의 특성 때문이다.
수정안은 미국 등 대응이나 글로벌 시장 상황, 내부 결정 과정을 거쳐 공식 발표나 시행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올해 안에 확정할 것으로 지난 5일 예상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희토류 자석의 제조 기술 수출을 금지하면 희토류 채굴부터 물품 생산까지 전 과정을 통제할 수 있어 자석 생산 공장이 없는 미국·유럽 국가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이 자석 공급망을 장악해 성장이 예상되는 환경 분야에서 패권을 확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中 핵심 중 핵심 중희토류 생산량 축소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자연자원부는 최근 발표한 '2023년 희토류 채굴·제련 1차 총량 지표에 관한 통지'에서 올 상반기 희토류 채굴·제련 총량을 20% 가까이 늘리면서도 군사용 장비, 전기차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중희토류는 오히려 4.8% 줄였다.<본지 3월30일 보도>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생산 물량을 축소시키면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이 하반기에 또다시 생산량을 줄일 경우 글로벌 공급망까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희토류를 국가가 생산 총량을 통제·관리하는 중국의 '노림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희토류는 경희토류와 중희토류로 나뉜다. 희귀한 광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나, 쓰임새는 차이가 있다. 경희토류는 상대적으로 많이 매장돼 있으면서도 용도는 광학유리, 촉매, 광학제, 세라믹 등 주로 비첨단 분야이며 제한적이다. 또 경희토류 중 세륨이나 란타늄 등의 원소는 TV브라운관과 형광램프가 액정표시장치(LCD)나 발광다이오드(LED)로 대체되면서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중희토류는 산업·의료·군수용 장치, 전기차 배터리, 영구자석 등 첨단 기술 장비에 주로 활용된다. 미국·호주·베트남 등 세계 여러 곳에 묻혀 있는 경희토류 원소와 달리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 중희토류에 포함되는 원소는 중국 외에선 생산이 미미하다. 여기다 영구자석이 들어가는 제품의 수요 증가로 중희토류를 쓰겠다는 기업은 늘고 있다. 다른 금속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즉 핵심 전략물자 '희토류'는 중희토류를 사실상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中 빼면 대안 없는 중희토류 공급망
중국이 미국에게 희토류를 무기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막강한 글로벌 영향력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0%를 책임지고 있다. 미국은 15%에 불과하다. 희토류가 정제·가공 과정에서 환경오염 물질을 대량 배출하기 때문에 미국이 일찌감치 이를 포기하면서 중국의 정제·가공 역량 비중도 87%까지 올라왔다.
미국 등 타국에서 부랴부랴 희토류 채굴과 정제·가공 기술이나 신물질 개발에 나선다고 해도, 그 기간 전까지 중국이 기다려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작정 희토류만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인 중희토류 원소가 들어있는 희토류 광산을 찾아야 하는 것도 숙제다.
더 큰 우려는 오히려 중국이 희토류 기술 수출금지·제한에서 나아가 희토류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수출 차단이라는 극단적 선택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스마트폰부터 반도체 연마제·디스플레이·배터리·전투기 등 첨단산업에 두루 활용되는 중국산 희토류 의존 국가들의 충격은 커진다.
중국이 표면적으로 미국에 대한 보복을 감추기 위해 환경보호, 자국 내 신에너지차 등 희토류를 원자재로 쓰는 산업의 급속한 성장(자국 수요 증가)을 명분으로 내세우게 되면 전체 글로벌 희토류 시장에 대한 공급을 줄일 수 있다.
■美 동참 거부도·中 등돌리기도 어려운 韓
한국의 고민은 포괄적·전략적 동맹 관계인 미국 뜻을 거스를 수도, 영구자석에 쓰이는 네오디뮴의 86%, 반도체 연마제로 사용되는 희토류의 54%를 의존하고 있는 중국과 등을 지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대중 규제 동참과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투자 인센티브로 제시한 보조금을 받으려면 10년간 중국 내 생산 시설 5% 이상 확장 금지, 공장가동률·종류별 웨이퍼(반도체 기판)생산능력·예상 수율 등 민감 자료 엑셀자료 제출을 비롯한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은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6㎚ 이하 로직칩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들일 경우 자국 상무부의 별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중국 반도체 공장 내 첨단 장비 업그레이드를 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중국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에 편승하기도 어렵다. 한국은 2017년 한한령(한류제한령), 2011년 요소수 등을 겪었거나 아직 겪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 호주, 캐나다 등 자국의 의지에 반하는 국가에게 수시로 보복 조치를 단행한다. 직접적인 희토류 수출 중단에 백기를 들었던 일본 사례도 있다. 중국은 지난달 말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에 착수했고, 외신들은 "한국과 일본 같은 이웃 국가에 보내는 경고 신호"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광물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상호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전병서 중국 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파이낸셜뉴스 기고를 통해 "'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봉쇄당한 상황에서 중국은 '산업의 비타민'인 희토류를 조절해 반도체 외 공급망을 흔들겠다는 전략"이라며 "이른바 '희토류 자석' 관련 원재료 80~90%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위기 상황이 생기면 대책이 없다. 어느 한 편에 휩쓸린 '정치외교'가 아니라 양편을 다 아우르는 신중한 '실리외교', '기술외교', '자원외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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