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도울 수 있을까 [김한민의 탈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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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난민 수백명을 구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지난한 난민수속 과정을 돕는 일은 소용돌이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기도 했다.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민 사진들을 보여주며 구호의 시급성을 역설해 기립박수도 받았지만, 그 많은 청중 가운데 실제 난민 한명이라도 돕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꼭 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인생에 한번은 궁지에 몰린 타자를 도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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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한다는 건… 대체 어떤 거야?”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백명을 구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난 누군가를 제대로 돕는 것도 너무 어려워 불가능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구한다’는 건 상상도 가지 않아 던진 질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10년도 더 되지만 모든 일은 뜻밖에, 갑자기 일어났다. 사진가로서 영예인 모 유명 잡지의 지원 작가로 선정돼 수십개국을 누빌 꿈같은 프로젝트를 펼치려던 찰나 코로나19가 터졌다. 여행 금지로 모든 계획이 무산됐지만, 일찌감치 확진된 덕(?)에 회복한 감염자에 한해 여행을 허가한 몇몇 발칸 국가들에서 사진 작업을 재개하려는데,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2021년 8·15 사태’가 일어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녀는 두번 고민할 여유도 없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난민들의 탈출을 돕고 또 도왔다. 그녀에게 누굴 구한다는 건 비유가 아니었다. 실제 행동이었다. 지난한 난민수속 과정을 돕는 일은 소용돌이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기도 했다. 난민들에게 그녀는 만능 해결사, 구원자 같은 존재였고, 어떤 이는 감사의 마음으로 그녀 얼굴이 새겨진 카펫을 제작해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화를 그녀는 전혀 자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능’하긴커녕 힘없는 일개 시민일 뿐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단지 비극 앞에 손 놓고 있는 세상에 참을 수 없어 행동했을 뿐. 그녀는 세력가들, 지인들을 쉼 없이 쫓아다니며 난민들을 도와달라고 통사정하고 때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친구도 여럿 잃었다.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민 사진들을 보여주며 구호의 시급성을 역설해 기립박수도 받았지만, 그 많은 청중 가운데 실제 난민 한명이라도 돕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아프가니스탄판 ‘쉰들러 리스트’는 200명이 훌쩍 넘었다. 그녀를 아는 난민들은 보증인이 필요하면 너도나도 그녀 이름을 댔고 그로 인한 불이익은 온전히 그녀 몫이었다. 다른 한편에선 오해와 비방도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한해를 버텼다. 그동안 그녀는 사진 한장, 글 한줄 남기지 못했다. 완전한 마비 상태였다. 꽉 찬 메일함은 아프가니스탄 관련 메일뿐이었다.
남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버리는 일과 동의어가 되자, 이제 삶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아마존이 눈에 들어와 그녀는 정글로 ‘탈출’했다(우리는 그곳에서 만났다). 그리고 거기선 원주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돕겠다고 순진한 마음으로 나섰다가 늪에 빠지듯 끝없이 빨려 들어간 경험을 나도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얘기를 들을수록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이 모든 일을, 그녀는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내 자식들 얘기 같은데 어떻게 쓰겠냐며.(하지만 자식 얘기를 쓰는 작가들도 많지 않은가?) 그녀가 쓸 수 없다기에 내가 기록해두고 싶었다. 한때 모두의 입에 오르다가 기억 바깥으로 밀려난 아프간 사태의 뒷얘기를.
꼭 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인생에 한번은 궁지에 몰린 타자를 도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지간히 무감각하지 않고는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매번 외면할 순 없다. 참된 인간이라면 다른 인간을 도와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이 인간처럼 살길 포기하는 걸 의미해도 도울 수 있을까?
혹자는 이 세상엔 짐을 지는 사람과 지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문제는 누군가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누군가는 조금도 안 지는, 혹은 지우기만 하는 불균형이 아닐까, 한 인생사를 들으며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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