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정치생명은 결국 끝난 걸까?
[세계의 창]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도널드 트럼프가 탈세와 회계 관련 조작 등 34개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기소된 첫 사례다. 이로써 미국은 국가수반이던 사람이 형사재판을 받는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페루·말레이시아·브라질 등에서 전직 수반이 투옥됐다.
언론의 헤드라인은 트럼프가 자신의 성관계를 입막음하기 위해 포르노 스타에게 돈을 준 혐의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수사의 초점은 재미없으면서도 트럼프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트럼프와 그 동료들이 포르노 스타와 다른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어떤 일을 했는가가 문제다. 트럼프는 분명히 돈을 줬다. 그는 그 돈의 사용처와 관련해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이게 연방 선거자금법을 위반한 ‘중범죄’인지는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재판은 오래 걸린다. 다음 직접심문은 12월4일에나 열린다.
트럼프는 (이번에 기소된 뉴욕주가 아닌) 다른 주에서 기소될 수도 있다. 조지아주 관리들을 시켜 2020년 11월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고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연방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원 ‘1·6 사태’ 특별조사위원회는 의사당 난동자들과 공모하고, 상·하원 합동회의를 방해하고, 권력을 사취하려 한 것 등 4개 혐의로 그를 고발했다. 사법 방해를 저지르고, 백악관에서 반출한 기밀문서를 놓고 거짓 진술한 것을 두고도 법무부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특별검사는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며 기부금을 받은 것을 두고 금융 사기와 돈세탁 혐의 수사도 감독하고 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속이고, 협박을 일삼는 정치인에게는 감옥행이 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 수사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든 트럼프의 정치 경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24년 대선의 공화당 유력 주자로 남아 있다. 지난달 당내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8%포인트 앞섰는데 기소 뒤에는 25%포인트 이상 차이를 벌렸다.
공화당의 열혈 지지층 다수가 그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을 지지한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많은 공화당원이 당을 떠났다. 하지만 공화당이 곤경에 빠졌다는 뜻은 아니다. 100만명 이상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에 가담하면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는 데 기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일대일 가상 대결에서도 트럼프의 성적이 좋아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1~2%포인트 앞섰다.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부해왔다. 대통령이나 총리를 재판에 회부하는 나라들을 경멸해왔다. 미국 스타일의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며 세계적으로 연간 수십억달러를 써왔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원래 미국 민주주의는 참정권 제한, 지나친 돈의 영향력, 대통령 선거인단이라는 독특한 제도 등으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 민주주의는 트럼프 때문에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전직 수반을 투옥하는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적 동기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퇴임 뒤 투옥됐지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 재선됐다.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 처벌 과정은 훨씬 공정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기소라고 주장하지만, 기소된 그의 범죄 혐의는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의 기소에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죄를 지었고, 지금 민주주의가 반격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부패 또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정치권력을 사용한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조지아주나 연방 차원의 기소가 이뤄지면, 정치 시스템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특정한 정당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정치 전체에 대한 위협이다. 미국이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려면 트럼프의 행동에 책임을 묻고 그의 정치생명을 영원히 끝내 이런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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