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지 않았다
[서울 말고][이태원 참사]
[서울 말고]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159개의 우주가 사라졌고 그 후 우리는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지옥 같은 밤과 낮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은폐했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10·29 진실버스에 오르기 전 한 유가족이 담담히 말했다. 가슴에 콕콕 박혀 내내 파고든다.
지난 2일 전국을 순회 중인 ‘10·29 진실버스’가 진주에 도착했다. 서울, 인천, 청주, 전주, 정읍, 광주, 창원, 부산을 거쳐 7일째에 진주에 왔다. 10여명 유가족은 이른 아침부터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오후에는 지역 시민들과 단체·정당 관계자들을 만나 참사 이후 진행 상황을 전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 국민동의 청원을 호소하던 최선미(희생자 박가영 어머니)씨의 마지막 발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소 지쳐있었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우리가 이렇게 진실규명에 나서는 것은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닙니다. 우리 아이는 죽었고 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실규명을 하더라도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10·29 진실규명은 죽은 내 아이보다 살아있는 아이들의 미래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합니다.”
고백하건대 불과 5개월 전 일인데 10·29 이태원 참사를 잊고 있었다. 진상규명이 어찌 되는 지에도 무관심했다. 유가족을 만나고 증언과 심정을 들으며 스스로가 내내 부끄러웠다. 현장에 가지 않는 한, 언론보도로 여론이 들끓지 않는 한 지역에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날 간담회 뒤 유가족은 진주지역 시민활동가들과 거리에서 ‘이태원 참사 독립적 조사 진상규명’ 펼침막을 들고 시민들을 만났고, 특별법 제정 국민동의 청원을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9년이 흘렀는데 한국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때와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참사가 일어났고, 왜 죽어야 했는지를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이 당연한 일을 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돼야 하고,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해야 하고…. 국가가 해야 할 일 중 첫번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다. 전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이태원 159명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참사’인 이유다. 기억하고, 바꾸자고 했지만 책임자들의 대응은 여전히 은폐와 회피다. 국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0년 사이 몇몇 숫자는 한국사회에서 숫자 이상의 의미가 됐다. 2014년 이후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로 각인됐고 2022년 10월29일은 10·29 이태원 참사로 박혔다. 304는 4·16 세월호 희생자 수이고, 159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수다.
세월호 참사로 끝나야 할 일이 이태원 참사로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또 언제…. 생각조차 끔찍하지만, 국민 안전을 위한 법안이나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나 재발방지 대첵 마련에 나서는 정치인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니 희생자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특별법 제정 국민동의 청원엔 열흘 만에 5만명 이상이 동의해 국회 행정안전위 안건으로 상정됐다.
지금 진주시내 곳곳에는 ‘사회적 참사 없는 세상으로…’ 노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다. 배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가 죽음을 맞고, 축제가 열리는 거리에서 죽음을 맞고…. 겨울 지나 꽃이 핀다고 설렘에 젖어보지만, 가족나들이도 가지만, 과연 한국사회는 안전한가? 국가는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가? 우리는 각자도생해야 하는 걸까. 모두의 안전과 평화가 절실한 봄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모두의 평화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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