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의 청개구리] 묻혀버린 마지막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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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그냥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고온과 그 전체적 맥락인 기후변화를 늘 생각하는 사람은 날씨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다.
'마지막 경고'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까지 달고 공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 말이다.
이미 IPCC는 2018년에 발표한 제5차 보고서에서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반토막내는 수준으로 줄여야 기온상승을 1.5℃ 안으로 묶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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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청개구리]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그냥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요즘 햇살을 받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다.
추위의 긴 터널을 지나 두꺼운 옷 훌훌 벗어 던지고 만끽하는 봄기운처럼 반가운 것은 없다. 그런데 가만 있어 보자. 아직 좀 이르지 않나? 3월 말, 4월 초치고는 너무 따뜻한 것 아닌가? 그렇다. 때아닌 초여름 날씨가 벌써 시작된 것이다.
이상고온과 그 전체적 맥락인 기후변화를 늘 생각하는 사람은 날씨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다. 저 팔랑이는 벚꽃잎이 기상관측 이래 두번째로 이르게 개화했다는 걸, 역대 가장 더운 3월로 인해 어디선가 산불이 급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따스함이 얼마나 극심한 여름의 무더위를 예고하는 것인지 상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때 이른 봄이라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기후와 함께 사람도 이상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좋은 날씨조차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봄꽃의 이른 개화를 보며 지구촌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자는 비록 개인적으로는 다소 불행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은 신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꽃과 비슷한 시기에 전달된 또 하나의 소식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 경고’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까지 달고 공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 말이다. 이젠 그 어떤 단어나 표현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주제가 돼버린 기후변화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이라는데? 국내에서는 거의 이슈화되지도 않고 지나쳐버린 것은 실로 너무한 것 아닌가?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인류가 살얼음판에 있다’라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호소도 무색하게 우리는 그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마구 뛰어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분야든 한국인이 등장하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갖는 우리의 국뽕 성향도 여기서 만큼은 무반응이다. 경제학자인 이회성 박사가 IPCC 현 의장으로서 이번 보고서 소식을 다루는 외신에서 다수 등장했지만, 이상하게 정작 우리는 무관심하다.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구의 기후체계를 그나마 정상 범위 안으로 유지하는 한계치로서 자주 언급되는 1.5℃ 상승폭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IPCC는 2018년에 발표한 제5차 보고서에서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반토막내는 수준으로 줄여야 기온상승을 1.5℃ 안으로 묶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작성주기가 약 6-8년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다음 보고서는 2030년 전후가 될 것이므로, 6차 보고서는 1.5℃ 한계선을 지키는 것이 여전히 가능한 기간 안에 발행되는 마지막 보고서다.
뒤집어 말하면 아직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번 보고서는 경고 못지않게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인류는 탄소배출을 감축할 방법을 갖고 있으며 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시행하면 1.5℃ 한계선 안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고’이지 ‘선고’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둘 간의 격차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의 요지다.
마지막 경고와 함께 묻힌 소식이 또 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의무를 규정하고 법적 권고를 하도록 한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남태평양의 섬나라인 솔로몬 제도의 학생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4년 전에 제안했던 사안이다. 이 모든 정황을 다 무시하고 봄기운만 즐길 순 없다. 그것도 너무나 때 이른 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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