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만 문제일까..직장 괴롭힘에 10명 중 1명 "이대로 그냥" 고민했다
정순신 아들 학폭 다름 없어 "폭언 등 일상사"
법 시행 4년차.."괴롭힘 수준 더 심각해져"
피해자 절반 이상 '참거나 모르는 척' 한계
법 체제 등 보완돼야.. 조직문화 개선 과제
# 직장인 A씨. 상사에게 매일이다시피 듣는 말이 "너는 머리가 어떻게 됐냐?", "미친XX", "내가 어떻게 되라고 이따위로 일하냐"가 대부분입니다.
보고서 한 장 마음에 들게 못썼다고 종일 귀에 못이 박히게 욕을 듣는게 과연 정상적인 생활일까.
"이러다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며 심적인 괴로움을 호소했습니다.
# "유서에 저 OOO,△△△ 이름들 다 쓰고, 이대로 그냥 떠나버리면, 그때 가서야 알아줄까 싶네요".
직장인 B씨는 전에 없던 위염에 역류성 식도염은 보통이 되어 버렸고, 남 얘기인줄만 알았던 공황장애까지 얻었습니다.
병원에서 한 달 진단서를 받고 회사에 냈더니 돌아온건 "앞으로 어떡하려 그러냐. 알아서 해라"라는 무책임한 말 뿐. 아예 사표를 쓸까 고민 중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그늘이 더 짙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아들의 '학교폭력(학폭)'으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를 계기로 학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이를 계기로 한 '직장폭력(직폭)'에 대한 문제성을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례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비단 물리적 폭력만이 아닌 직장 조직 내에서 상사 등이 다른 직원들에 폭언이나 욕설을 가하면서 사실상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고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습니다.
직장인 30%, 즉 3명 중 1명이 '직폭'에 고통받았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한 직장인 10명 중 1명이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지만 실제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삭히거나 직장을 관두는게 최선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법의 실효성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이 더 뒤따라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 직장인 30% "직장 괴롭힘 경험"…모욕·명예훼손 최다
오늘(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을 통해 지난달 3∼10일 직장인 1,000명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1%가 '지난 1년 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9년 6월 조사 결과(44.5%)에 비해 14.4%포인트(p) 감소한 수준입니다.
유형별로 보면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18.9%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부당지시(16.9%), 폭행·폭언(14.4%), 업무외 강요(11.9%), 따돌림·차별(11.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 괴롭힘 대상 10%.."극단적 선택도 고민"
전체 비중은 줄었는데, 강도는 더 세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경우의 48.5%가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습니다.
4년 전 조사(38.2%)에서 답한 비중보다는 10.3%p가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심각하다고 느끼는 비중은 고용이 불안정할 상태일 때 심했습니다. 비정규직(35.0%)이 정규직(26.8%)보다 높았고, 여성(34.5%)이 남성(26.7%)보다 비중이 높았습니다. 5인 미만(54.9%), 월 150만 원 미만(58.3%) 등에서 더 정도가 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응답자의 10.6%가 ‘자해 등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만큼 '직폭'으로 인한 개인적 부담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으로, 피해자 34.8%는 병원 진료나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지만 정작 이에따라 정신진료나 상담을 받은 경우는 6.6%에 그쳤습니다.
10명 중 1명도 안되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고 있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 괴롭힘 금지법 효용성 "글쎄".. 59% "참거나 모른 척"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규제 대상임에도 이에 적극 대응해,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찾긴 드물었습니다.
'참거나 모른 척했다'고 답한 경우가 59.1%(중복 응답 포함) 달했습니다.
이어 '회사를 그만뒀다'(32.2%), '개인 또는 동료들과 가해자 측에 항의했다'(28.2%) 순입니다.
그리고 '사측·노조에 신고'(4.3%)나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신고'(4.0%) 등으로 피해를 알리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합쳐서 신고했다는 응답이 8.3%로, 이 역시 정신적 치료 등과 마찬가지로 10명 중 1명 수준에 못미칩니다.
■ 법 제도 불신.. 피해자 외면 초래
신고 등이 미비한 이유는 법 체제 자체에 대한 불신 등이 주요인으로 꼽힙니다.
'학폭'과 마찬가지로 신고했을 경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의구심 등이 작용해 신고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71.0%),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17.0%)란 답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사 과정에 대한 불신도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고 이후 객관적 조사, 피해자 보호 등 회사 조사·조치 의무가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선 63.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신고 이후 불리한 처우를 당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33.3%가 '있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신고가 이뤄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응분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서 결국 피해자 등의 수동적 대처를 이끄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 처벌 수위 등 미흡.."기업, 조직문화 개선 뒤따라야"
나아가, 법의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한 보완과 기업 자체의 조직 문화 개선 등 자구 노력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신고자에 회사가 불이익을 준 경우가 형사처벌 대상이고 사업주에 의한 괴롭힘 행위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 또 ‘피해자 보호’나 ‘가해자 징계’ 등을 사업장이 위반해도 500만 원 과태료 부과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만큼 피해자,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배려나 보호가 부족하고 약자층에 대한 고려 역시 취약한데서 한계를 드러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괴롭힘이 되풀이되는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지속 실시하고,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현 과태료 수준에 그치는 처벌 수위 자체를 높이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5인 미만 사업장을 비롯한 특수고용이나 원청, 경비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적용할수 있는 개정 노력이 이어져야하고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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