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수요 급감 공모펀드, ETF로 전환상장···중소사 활로 뚫어줄 것"
대담=손철 시그널·증권부장
일정규모 이상 펀드 ETF 상장땐 중소사 LP확보 부담 덜어
사모펀드, 모험자본 공급·고용창출 효과 커 '색안경' 벗어야
대체거래소 ATS 예비인가 신청···지급결제도 6월말 결론
올해 1월 2일 취임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11일로 벌써 취임 100일을 맞게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쉼 없이 달려온 서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증권·자산운용 업계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고민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최근 침체에 빠진 공모·사모펀드 시장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그는 펀드의 국내 자본시장 기여분을 새삼 강조하면서 이르면 내년 말 출범할 대체거래소(ATS), 증권사 법인 지급 결제 허용, 국내 기업 해외 진출 등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서 본지와 만난 서 회장은 취임 100일 소회를 묻자 “회사 사업만 하면 됐던 자산운용사 대표 때와 달리 지금은 증권사·운용사 등 전체 회원사를 다 아울러야 하는 측면에서 균형 잡는 게 어렵다”고 운을 뗐다. 말은 어렵다고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증권사와 운용사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는 부담감 못지않게 금융투자 업계 전체 발전을 위해 뛴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는 “증권사에 23년, 자산운용사에 11년간 몸담은 만큼 금융투자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하라는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 회장은 지난해 12월 23일 65.6%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하며 제6대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업계에서는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만 해도 후보자 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봤으나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 출신의 서 회장은 예상을 보기 좋게 깼다.
그는 “증권사와 운용사를 모두 거친 경험을 토대로 금융투자 업계를 균형감 있게 이끌겠다”는 취임 일성처럼 어느 업권에 치우치지 않게 업무를 추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권사 해외 진출, 비은행권의 지급 결제 허용, ATS 예비 인가 등의 사업을 취임 직후부터 빠르게 진행했다. 자산운용 부문에서는 공모펀드 경쟁력 강화, 사모펀드 인식 제고 등 펀드 사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어나가면서도 서 회장은 구태의연한 틀에 갇히지 않았다. ‘실용’을 중심에 두고 해결 가능한 대안에 집중했다.
서 회장이 구상하는 공모펀드 경쟁력 강화 대책은 그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는 고비용·저효율로 일반 투자자가 외면하는 기존 공모펀드 활성화 방식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공모펀드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급속한 정보기술(IT) 발달로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공모펀드의 역할은 사라지고 있다”며 “공모펀드 시장구조 자체를 ETF 중심으로 전환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투자자들은 최근 공모펀드에서 자금을 빼 ETF에 쏟아붓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내 공모펀드 설정액(머니마켓펀드·ETF 제외)은 2월 6일 기준 99조 8892억 원을 기록해 2007년 6월 이후 처음으로 100조 원 밑으로 내려갔다. 반면 ETF 시장은 2020년 말 52조 원에서 2021년 말 74조 원, 지난해 말 82조 7000억 원으로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다.
서 회장은 공모펀드의 ETF 전환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 시장에서 2021년 처음 공모펀드의 ETF 전환 사례가 나온 후 올해까지 총 40개 공모펀드가 ETF로 상장됐다”며 “이제 그 규모도 순자산 기준 총 400억 달러(약 52조 6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서 회장은 나아가 ETF 전환 상장이 중소형 자산운용사의 성장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양강 구도인 국내 ETF 시장을 깨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서 회장은 “유명 공모펀드를 ETF로 전환하는 게 경쟁력 강화의 최선책”이라며 “브랜드 가치가 있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모펀드가 ETF로 상장하면 운용사가 판매사에만 의존하는 현 구조를 타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3000억~4000억 원 규모의 공모펀드가 ETF로 상장되면 중소 운용사가 가장 힘들어 하는 유동성공급자(LP) 확보 이슈를 해결할 수 있다”며 “LP를 구하지 못해 신규 ETF를 상장하지 못하는 중소 운용사에 유용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 회장은 민관이 모두 사모펀드에 대한 색안경을 벗었으면 한다는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정치 이슈 등으로 사모펀드가 우리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평가절하되고 있다”며 “모험자본 공급과 고용 창출 측면에서 사모펀드를 육성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사모펀드는 쇼트(매도)도 많이 해 과도하게 고평가된 주가를 안정시킨다”며 “사모펀드의 한 종류인 행동주의 펀드도 지배구조 개선, 주주 친화적 배당정책을 이끌어내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형 자산운용사가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라며 “사모펀드는 이와 달리 고위험·고수익의 벤처·비상장기업을 발굴해 메자닌·지분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메자닌은 채권과 주식 성격을 모두 지닌 신주인수권부사채(BW)·전환사채(CB) 등을 뜻한다. 위험도는 낮으면서 회수는 쉬운 투자 방법이다. 운용 실적을 축적 하려는 신생 운용사나 높은 위험 회피 성향을 추구하는 운용사가 적극 활용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사모펀드를 통해 메자닌과 비상장기업 지분증권에 투입된 자금은 각각 9조 원, 22조 800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 회장은 이와 함께 사모펀드를 더 육성해야 할 이유로 미래산업 성장, 고용 증진도 들었다. 그는 “IT가 발달하며 전통 금융인 은행은 고용이 계속 주는 데 반해 자산운용 업계 고용은 전문 사모운용사 창업 급증 효과로 꾸준히 늘어났다”며 “고용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사모펀드 쪽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모펀드 관련 인력은 2015년 말 4309명에서 지난해 말 6361명으로 늘어나는 사이 사모펀드 관련 인력은 같은 기간 986명에서 6359명으로 더 많이 증가했다. 올해에는 사모펀드 임직원 수가 공모펀드를 뛰어넘었을 것이라는 게 자산운용 업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설정액 규모도 사모펀드(569조 2000억 원)가 머니마켓펀드(MMF)·ETF를 포함한 공모펀드(283조 1000억 원)의 두 배 수준이 됐다.
서 회장은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세제개편안도 5월 내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금융투자소득세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사모펀드 투자자의 펀드 수익이 배당소득으로 일원화돼 최대 49.5%의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금융투자협회는 공모·사모운용사, 사무관리사, 판매사 등 총 20여 곳이 참여한 금투세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그는 “사모펀드 수익을 모두 배당소득으로 일원화하는 게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와 금투세로 할지, 소득 원천별로 세금 부과를 달리할지 논의하고 있다”며 “업계 의견을 모아 소득세법 개정을 위한 최종안을 당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한국거래소와 경쟁하게 될 ATS 출범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ATS 준비 법인인 넥스트레이드가 예비 인가를 신청했다”며 “앞으로 1년가량 전산 시스템을 개발하고 내년 말 영업을 개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TS를 통한 토큰증권(ST) 거래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 서 회장은 “ST는 장외에서 거래되는 상품인 데 반해 ATS는 장내거래에 대한 인가를 받는 것”이라며 “장외거래 전용 ATS 인가를 추가로 받거나 별도 장외거래 플랫폼을 통해 ST를 거래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 회장은 증권사에도 월급 통장 개설 등 지급 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기대를 완전히 놓지 않았다. 증권사 지급 결제 업무 허용은 업계의 숙원인 까닭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지급 결제망을 총괄하는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며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그는 관련 질문에 “(비은행권의 지급 결제 허용을 위한) TF가 6월 말 정도에는 논의를 정리할 것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서 회장은 증권사의 수수료·이자 장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금융투자 업계, 금융 당국과 함께 TF를 구성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며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이를 빨리 반영하는 구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국민 경제 차원에서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수수료·이자 장사 논란과 맞물려 정부가 독려하는 금융투자 업계의 해외 진출 사업에 대해서는 기대감과 부담감을 모두 내비쳤다. 그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인수합병(M&A) 방식으로,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은 직접 진출 방식으로 공략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진출 희망 업체가 있다면 당국 대 당국으로 규제·인허가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입장”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을 금융허브로 만드는 구상을 두고는 “해외 투자은행(IB)을 국내로 유치해 홍콩·싱가포르처럼 만들자는 구상이 있었지만 영어·세제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며 “글로벌 IB는 여러 국가 가운데 유리한 곳을 찾아가는데 우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은 글로벌 IB 국내 유치에 매달리기보다는 우리가 비교 우위를 갖는 베트남·태국·인도 등으로 금융투자 지도를 넓히는 편이 빠르다는 판단이었다.
서 회장은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투자 업종이 다른 업권에 비해 악영향이 적다고 짚었다. 대신 “SVB나 크레디트스위스(CS) 붕괴 과정에서 ‘모바일 뱅크런(스마트폰을 통한 대규모 예금 인출)’을 보고 많이 놀랐다”며 “예상하지 못한 새 위험 요인은 없는지 협회와 당국 모두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서 회장은 올 한 해 국내 증시 흐름에 관해서는 긍정론을 내놓았다. 그는 “지난해 말만 해도 애널리스트의 올해 전망이 대부분 비관적이었지만 1분기에 주가가 기대 이상으로 오르면서 증권사도 대체로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며 “증시에 경기 둔화 우려가 상당 부분 선반영된 만큼 이제는 바닥을 찍고 언제 올라갈지를 모색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정리=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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