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무서워 텀블러 필수 됐어요" 물 한잔도 공포가 된 대치동
서울 강남 한복판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마약음료' 테러가 발생하면서 사회 어느 곳에서도 '마약 안전지대'를 찾기 힘들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9일 매일경제가 테러·협박 사건이 발생했던 대치동 학원가를 비롯해 강남 일대 클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마약 실태를 취재한 결과 마약은 사실상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와 독버섯처럼 곳곳에서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학원가에선 학생들에게 예방대책을 안내하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관련당국에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청소년이 쉽게 이용하는 SNS를 통해 마약 판매 광고글이 제한 없이 넘쳐나면서 이들에 대한 단속이 절실한 상황이다. 마약 위험에 쉽게 빠지기 쉬운 클럽에서도 마약 관련 피해사례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단속과 대책 마련이 마약 유포 속도와 진화하는 수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날 강남학원운영협의회 등 학원가에 따르면 학원업계는 경찰 협조 요청에 따라 학부모들에게 예방교육을 당부하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 이후 마약 경계령이 떨어져 학부모는 물론이고 학원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남이 주는 건 먹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나 홀로' 통원하는 것도 극구 말리며 마약에 접촉되는 것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난 주말 대치동 학원가는 학원 수업 후 자녀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 차량으로 교통이 혼잡했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가 있다는 안 모씨는 "최근 학원 등원과 하원도 혼자 하지 않도록 되도록 데려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최씨는 "유흥업소에서 술에 몰래 마약을 타는 범죄가 일어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이들까지 이런 위험에 놓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아이에게 텀블러를 들고 다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마약테러가 입시 스트레스에 취약한 학생들을 파고든 만큼 앞으로도 피해가 계속될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일명 마약음료를 권유한 일당은 해당 약물이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거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이라고 속여 학생들에게 시음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대치동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김 모씨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이 동네에선 학생들에게 좋다는 것이라 하면 뭐든 하는 분위기"라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마약 문화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점도 전문가들은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마약이 '놀 때 좋은 약' 또는 '다이어트 약'으로 포장돼 10대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 전문 변호사인 박진실 변호사는 "아이들은 마약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또래에게 '놀 때 재밌어지는 약' 정도로 권유받아 거부감 없이 시도한다"며 "선배나 또래의 권유로 시작해 중독되면 SNS를 통해 구매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트위터, 텔레그램 등 SNS상에서는 마약 판매와 같은 불법 관련 게시글이 무분별하게 게재되고 있었다. 마약 판매 글을 올린 이들은 필로폰, 엑스터시, 졸피뎀 같은 수면제 등 다양한 마약을 판매 중이었으며 필로폰은 1g에 70만원, 케타민과 대마초는 30만원에 구입 가능하다고 글을 올렸다. 텔레그램에서는 판매자가 특정 장소에 마약을 두고 가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인 '던지기' 게시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배우, 가수 등 인기 연예인이 잇따라 마약 투약으로 검거되는 점도 유명인사를 따라하려는 성향이 강한 10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수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유명 작곡가 겸 가수에게 1심 판결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10대 청소년에게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염려도 있다.
실제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이하 마약류사범은 481명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3년 58명에 비해 무려 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클럽 등 유흥가에서는 이미 마약이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으며 여성 등을 상대로 한 각종 범죄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주말 찾은 강남에 있는 한 클럽에서는 담배 등으로 각종 연기와 여러 냄새가 뒤엉킨 가운데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클럽을 즐겨 찾는다는 대학생 유 모씨(21)는 한두 차례 알약 형태의 마약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유씨는 "의심스러워서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며 "클럽에서 여러 명이 무작위로 알약을 먹는 모습도 봤고, 약을 먹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많아 안전지대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타인이 주는 술을 마시다가 급격하게 취해 정신이 혼미해진 경험도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공유되고 있다. 직장인 김 모씨(29)는 "타인과 술을 공유해 마시는 클럽 문화가 있는데, 평소 주량을 넘기지 않게 친구와 술을 마셨지만 급격히 취했고 정신이 혼미해졌다"면서 "둘 다 갑자기 약에 취한 것처럼 정신을 잃을 뻔했는데 누군가가 술에 약을 타서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가영 기자 / 김정석 기자 / 박나은 기자 / 김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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