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단속뿐 아니라 예방·치료에 투자해야”
마약 치료보호 의료기관 총 21곳이지만 현실은 부족
지난해 21곳 중 9곳은 5년간 단 한건도 실적 없어
9일 매일경제가 취재한 마약문제 관련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마약을 복용한 사람들을 치료할 물적·제도적 지원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의 마약 대응책이 주로 수사기관의 ‘마약사범 검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다른 한 축인 보건의료기관 주도의 ‘마약환자 치료’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의 피해자인 학생들이 의료지원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유엔 ODC)의 국제 과학수사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는 “마약이 국내에 들어오는 걸 막는 ‘공급 억제’는 경찰 등 수사당국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마약 복용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기 복용자의 재복용을 막는 ‘수요 억제’에는 우리나라가 너무 약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약의 위험성을 청소년 등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주고, 마약 복용자는 의료기관에서 중독을 끊을 수 있도록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내에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21곳이지만, 대부분 병원은 전문 의료진과 시설 부족을 이유로 중독자 치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21곳의 지정병원 중 무려 9곳(42.9%)이 5년 동안 단 한 건도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실적이 없었다. 나머지 병원들도 대부분 연간 1~5건에 그쳤다. 인천의 참사랑병원과 경남의 국립부곡병원만이 연간 수십건 이상으로 제 몫을 했다.
현행 제도상 보건복지부나 전국 시·도지사 등이 지정한 이들 병원은 마약류 중독 환자들을 최대 1년 동안 무상으로 검사·치료해야 한다. 비용은 복지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한다. 마약 환자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은 없게 하자는 취지다.
정 교수는 “마약 관련 치료를 위해서는 약독물부터 심리상담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설비가 필요하다”며 “인프라가 부족하니 지정병원들마저 환자가 오더라도 치료하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장 돈이 안 돼도 투자를 계속하고, 단 한 명의 환자만 있더라도 병원이 치료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민간 마약류 중독 재활센터) 센터장은 “마약 예방과, 초기 치료, 중장기적인 재활 과정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모두 달라 골고루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을 돕는 다르크는 정부 지원 없이 입소자들의 입소비 40만원 가량으로만 운영된다. 이 때문에 중독자들은 재활을 마치지 못한 채 퇴소하거나, 중독증세나 전과 기록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마약상으로 빠지기 쉽다. 마약 재활 분야에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들이 다시 생계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마약을 파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임 센터장은 “정부와 병원, 민간기관들이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른데 다르크는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족들이 도와줄 여유가 있는 이들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마약 중독자들을 도와 사회로 복귀시킬 방안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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