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합성한 음란물…성범죄 아니라고?
'지인능욕' SNS서 판치는데
성범죄 혐의 적용 쉽지않아
피해자들 극도의 고통에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상황
전문가 "처벌수위 높여야"
고등학생 A양은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자신의 사진이 성희롱 글과 함께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른바 '지인 능욕' 게시글에 사진이 도용돼 피해를 입은 것이다. A양은 "인스타그램에 친구들만 볼 수 있도록 올려놓은 사진이 이름, 거주지 등의 개인정보와 함께 돌아다녔다"며 "작성자가 마음대로 지어내 쓴 신체 사이즈나 성생활, '걸레' 등의 비하적인 글귀도 써 있어 구역질이 났다"고 말했다. A양은 자신이 가깝게 지내는 지인 중 한 명이 사진을 도용해 그런 게시글을 썼다고 생각하니 대인기피증이 와 외부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A양은 "경찰 수사도 더디고, 한번 얼굴이 잘못 퍼지면 인터넷에서 되돌릴 수 없을까봐 너무 무섭고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타인의 사진에 신상정보를 같이 올리고, 성희롱성 글을 붙이거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대상자를 성적으로 비하하고 이를 다수가 소비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한 방식인 지인 능욕이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횡행하고 있다. 범행 대상은 가까운 지인부터 교사, 연예인, 심지어는 가족까지 가지각색이다. 9일 방송통신위원회의 '2022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4~고3 청소년 응답자의 5.1%는 지인 능욕 범죄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법영상물 유포'(5.8%), '몰래카메라(불법 촬영)'(5.5%)에 이어 세 번째다. 전년도 조사에서 지인 능욕 범죄를 목격한 청소년은 5.6%로 1년 새 소폭 줄긴 했지만, '디지털 성착취' '몸캠' 등의 유형보다도 높은 비율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까지 사용해 특정인의 사진을 합성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과 신상정보를 올려 성희롱하는 것을 넘어서 당사자의 표정을 바꾸거나 음란물처럼 조작하는 방식이다. 최근 SNS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뢰를 받고 지인 능욕 게시물을 딥페이크로 합성해주다 경찰에 붙잡혀 구속된 20대 남성 김 모씨는 되레 자신의 고객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추가 범행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사실 온라인 자경단이고, 범죄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30만~50만원을 갈취하거나 개인정보를 받아 추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범행을 알아차려도 가해자를 즉각 처벌하기는 어렵다. 현행법상 사진에 성적 모욕을 담았다고 해서 성범죄 혐의가 적용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장 수위를 낮추는 경우도 많다. 당국이 지인 능욕을 사이버 성범죄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실제 법적 다툼에서는 성범죄 적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적용되는 혐의를 바꾸더라도 검거는 쉽지 않다. 최근 고등학생 피해자 B양은 텔레그램에 자신을 대상으로 한 게시물이 유포돼 경찰에 신고했지만 "서버가 해외에 있어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검거가 가능하더라도 1년 이상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은 극도의 고통을 호소한다.
이에 대해 김재련 변호사는 "반드시 성범죄로 의율하지 않더라도 재판부가 명예훼손 등 혐의로도 범행의 위험성이나 파급력을 고려해 징역형 등을 선고할 수 있다"며 "어린 학생들에게는 제재 일변도보다는 재범을 막기 위해 사회봉사나 수강명령 등 부수처분을 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이버 성범죄의 파급력 등을 고려해 법무부에서 주요 국가들과 더 적극적으로 긴밀히 협조해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인 능욕이라는 표현이 가해자 입장의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상이 반드시 지인에 한정되지도 않고, '능욕'이란 단어가 성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범죄행위임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능욕 범죄' '사이버 성착취' 등으로 다르게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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