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인가 모금원인가?"..쥐어짜기 기부금 '논란'
◀앵커▶
지역소멸의 위기에 놓인 고향에 기부도 하고, 세액공제와 답례품도 받는 '고향기부제'가 연초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홍보와 기부금 모집에 나서면서 과열 경쟁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요,
실제 공무원들에게 모금 실적을 제출하라는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강요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조수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전라북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기부실적이 단연 앞서간다고 자랑하는 임실군,
연초부터 지금까지 2,900여 건이 모여 3억여 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모집했다며 대대적인 홍보도 벌이고 있습니다.
이름 높은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면서 연간 목표치인 1억 원을 세 배 넘게 초과 달성했다는 설명입니다.
[임실군 고향사랑기부 업무담당자]
"저희가 조금 높은 편에 속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치즈가 아무래도 유명하다 보니까.."
그런데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표정입니다.
군청과 읍·면 사무소 직원 천 명에게 매주 발송되고 있는 이메일입니다.
직원 개개인의 홍보실적을 보겠다며 자료제출을 독려하는 내용.
'제출 마감시간을 엄수해달라', 이 홍보실적이 군수 주재 '간부회의에서 언급될 수 있다'고 강조까지 합니다.
기부실적을 기록하는 컴퓨터 파일도 있습니다.
실적 검증을 위해 공무원이 섭외한 기부자 이름과 주소, 기부 날짜까지 기입하도록 했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요구에 울며 겨자먹기로 실적을 만들어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임실군 공무원(음성대역)]
"지인한테 10만 원 주면 3만 원(답례품) 받을 수 있으니까 제가 이제.. 그냥 돈을 낸 경우죠. 혹시나 패널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찍히지 말자고 해서 그냥 기본만 하자, 이렇게 하죠."
관련법에 따르면 고향사랑기부를 강요하거나 적극 권유하고 독려하는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게다가 적발된 지자체는 일정기간 모금할 수 없습니다.
임실군은 제도 시행 초기라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홍보를 요청한 것 뿐이라고 해명합니다.
[임실군 고향사랑기부 업무담당자]
"저희 팀만 가지고 홍보한다고 해서 그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결코 성과를 매기거나 불이익을 주기 위한 강요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굳이 실적 제출을 요구한 이유를 묻자 '말로 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임실군 고향사랑기부 업무담당자]
"이제 저희 내부적으로는 그냥 어느 정도 하셨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니까. (그런데 왜 그런 정보가 필요한 건지가 궁금해서요.) 솔직히 저희가 그냥 말로만 하면.. 이제 그런 것들을 안 해주니까.. 잘.."
고향사랑기부제로 최근 석달간 3억 원가량을 모금한 익산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기부 업무와 무관한 직원의 홍보 실적을 파악한 것도 모자라 부서별 순위를 매겨 포상금을 지급해 사실상 강요 아니냐는 반발이 나온 겁니다.
해당 업무 담당자는 어느 지역이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입니다.
[익산시 고향사랑기부 업무담당자]
"전라북도권끼리 얘기가 되니까 제가 파악하기로는 이런 할당을 주는 시군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6급 이상은 (고향사랑기부자) 10명, 7급 이상은 3명, 이런 식으로 데려와라.."
결코 공무원에게 기부를 강요하거나 권유하지 않았다는 해명,
하지만 이런 식의 모금이나 경쟁이 과연 소멸 위기의 지역 사회를 살리자는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기부로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한창훈 / 전라북도 공무원노조 위원장]
"홍보 부족, 관심부족으로 실적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자치단체에서 이렇게 과한 의욕으로 하지 않나.."
제도 도입 이후 지난 3달간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개개 지자체에 기부로 모인 돈은 많아봤자 한 달에 1억 원,
출향인의 자발적인 참여가 미미하고 강요 논란만 불거지면서 과연 지속가능한 제도로 안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조수영입니다.
영상취재: 조성우
그래픽: 문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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