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주의 질식시키는 러시아의 언론인 감금

2023. 4. 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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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기자를 간첩 혐의로 구금하고 기소하면서 국제사회 공분을 사고 있다. 러시아의 언론인 감금은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독재 권력의 만행이자 반민주적 폭거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지난달 30일 러시아 중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미국 국적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지국 특파원을 붙잡아 구금한 뒤 7일 기소했다. 러시아 형법에 따르면 게르시코비치의 간첩 혐의가 확정되면 최고 징역 2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러시아는 "게르시코비치가 미국 지시에 따라 러시아 군산복합기업의 공장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기밀을 수집했는지 등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러시아가 게르시코비치를 감금한 것은 그가 평소 러시아에 불리한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7년부터 러시아를 취재해온 게르시코비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겪는 경제난이나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시인 동상 앞에서 애도하는 기사, 푸틴이 고립돼 소수 강경파들의 의견만 들어 실수했다는 기사 등을 집중 보도했는데 이로 인해 푸틴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근 러시아 스파이들이 유럽에서 대거 검거된 점을 들어 '인질 외교' 카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언론인 피살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러시아다.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도 이 같은 언론 탄압에 맞서 싸운 결과다. 언론은 시대의 거울이자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그런데도 러시아가 WSJ 기자를 감금한 것은 언론의 권력 감시와 비판을 막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패악이다. 언론의 자유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조롱과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WSJ 기자를 당장 석방해야 한다. 전 세계도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 만행을 규탄하고 강력한 연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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