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위기방어 역할 입증 … 기업 현금보유 적정 기준 제시

임성현 기자(einbahn@mk.co.kr) 2023. 4. 9. 17: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일 매경미디어센터서 시상식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매경 이코노미스트상 심사에서 심사위원장인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한국경제학회장)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황 위원장,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자본시장연구원장),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이충우 기자

한국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A사는 매년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며 내부유보금 수십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가 위축됨에 따라 최근 현금을 더 늘리며 주주환원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현금보유의 적정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한국 외환보유액은 2월 말 기준 4252억달러로 전 세계 9위다. 외환보유액 상위국은 일본을 제외하면 중국, 러시아, 대만 등 비(非)선진국이다. 개발도상국으로서 한국 외환보유액은 적정한 수준일까.

국내 최고 권위의 경제·경영 논문상인 53회 매경 이코노미스트상을 수상한 김윤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와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논문은 현실 경제와 실제 기업 경영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이론적·실증적 근거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윤정 교수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민간·공공 자본 흐름 비교(International Capital Flows: Private versus Public Flows in Developing and Developed Countries)' 논문은 전 세계 92개국의 방대한 자본 유출입 데이터 분석으로 단초를 찾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순자본 유입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 논문과 달리 김윤정 교수는 이를 다시 세분화해 각국 민간과 정부 부문의 자본 유출입도 추가로 분석하면서 경기 변동에 따른 패턴을 밝혀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민간 부문 자본 유입은 경기 순응적인 반면, 정부 부문은 경기 역행적이라는 것이다. 즉 호황기에는 민간 부문으로 글로벌 자본이 유입되고 정부도 해외자산을 사들이지만, 반대로 민간의 해외 차입이 어려워지는 불황기에는 정부가 해외자산을 줄인다는 것이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모형을 통해 호황기에 민간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 채 과도한 차입에 나섰다가 경기 위축 시 급격한 자본 유출로 위기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때 정부의 축적된 대외자산이 '안전판' 역할을 하며 실제 위기로 전이되는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설명이다.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축적한 자산을 통해 국내총생산(GDP)과 소비의 감소폭을 줄여주고 통화가치 하락도 방어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도 개발도상국이 외환보유액을 적절히 활용하면 민간 부문의 과도한 대외차입 부작용을 줄여 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환율 안정에도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역시 세계 금융시장에 크고 작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외환보유액이 '안전판' 역할을 하면서 급격한 달러 유출을 막아왔다. 전 세계 상위권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당국의 정책에 힘을 보태는 연구 결과다. 심사위원인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히 많은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우진 교수의 '기업 현금 보유 수준의 적정성에 대한 실증 분석(Do corporation retain too much cash? Evidence from a natural experiment)' 논문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적정한 기업의 현금보유 수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준실험 또는 자연실험이라는 실증연구 방법론을 동원했다. 2015년부터 시행돼온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옛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외생 충격으로 가정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는 기업이 투자나 임금 인상 등에 사용하지 않은 당기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로 물리는 것으로 작년 말 국회에서 다시 3년 연장됐다.

분석 결과 세제 도입 이전 기업 지배구조가 부실하고 외부 차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 중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이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당 등 주주환원에 인색한 기업도 현금 선호 경향이 강했다.

세제 도입 이후에는 외환위기를 겪었던 기업일수록 현금보유를 줄이는 대신 배당을 늘리며 기업가치가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낙후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은 보유 현금을 주로 투자활동에 사용했지만 기업가치 증가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배구조에 따라 세제 개편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심사위원인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기업의 적정 현금보유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 연구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임성현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