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지지층만 보는 혐오 정치는 외면받는다

양재찬 편집인 2023. 4. 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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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제1당은 무당無黨”
2030세대 40%가 무당층
한국 정치 심각한 위기 맞아
1년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
포퓰리즘 정책 경쟁하는 여야
미래 위한 입법 경쟁 펼쳐야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정당들은 벌써 총선 모드에 돌입한 모습이다. 지금이야말로 포퓰리즘 정책을 자제하고 입법 경쟁을 펼쳐야 할 때다.[사진=연합뉴스]

4월 5일 실시된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당 후보가 당선됐다. 직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함에 따라 치러진 재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이던 두 후보가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했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국민의힘 후보는 5위로 낙선했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국회의 역할을 방기한 채 사사건건 충돌하는 양당 체제의 폐해에 대한 유권자의 경고로 해석된다. 투표율 26.8%는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2014년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중 세번째로 낮은 것이다. 당선인의 득표 수는 전체 유권자의 10.4%에 그친다. 정치 무관심 내지 혐오의 표시이자 투표 포기를 통해 기득권 정당들의 행태에 항의의 메시지를 보낸 것일 수 있다.

양대 정당을 향한 경고는 여론조사 결과로 입증된다. 한국갤럽의 3월 마지막 주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며 33.0%로 같게 나타났다. 반면 무당층은 29.0%로 4%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2030세대 젊은층에서 무당층은 각각 46.0%, 41.0%로 양당 지지율보다 높았다. 이념 성향 중도층에서도 양당 지지율이 20% 후반대인 데 반해 무당층은 39.0%나 됐다. '여의도 제1당은 무당, 중도층'이란 말이 나돌 만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주보다 4%포인트 급락한 30.0%였다. 부정평가가 60.0%로 긍정평가의 두 배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한일 관계·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 외교, 경제·민생·물가, 경험·자질 부족, 무능함, 소통 미흡 등이 꼽혔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양대 정당 지지율 모두 '낮은 30%대'로 무당층 비율과 비슷하다. 또한 젊은 세대 및 중도층의 무당층 비율보다 한참 낮다는 점은 한국 정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이다.

대통령실은 뚜렷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국정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결단했다지만, 일본의 상응 조치가 미흡한 데다 후쿠시마 오염수, 수산물 논란이 겹쳤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전격 교체하면서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설명이 없다. 저출산 대책으로 보육 환경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주 69시간 근무를 허용하는 엇박자를 냈다.

여당이라도 역할을 해야 하는데 '친윤親尹' 일색의 지도부 등장으로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최고위원들의 잇따른 설화舌禍로 여론의 비판과 분란을 자초했다.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거나 양곡관리법 관련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을 제안하는 등 '최고위원 리스크'가 빈발했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산불 사고 당시 골프 연습을 하거나 술자리에 참석했다.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도 도긴개긴이다. 쌀 생산량이 예상치를 3~5% 웃돌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경우 초과 생산량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정부와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가운데 강행 처리했다. 방송법 개정안과 간호법 개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 등도 민생 법안의 이름을 붙여 밀어붙일 태세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정당들은 벌써 총선 모드에 돌입한 모습이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과 입법 경쟁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막대한 재원이 요구되는 '전 국민 1000만원 대출'을 추진할 태세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한 판에 전 국민에게 최대 1000만원을 최대 20년간 저금리로 빌려주는 기본대출을 시행하려면 대출원금만 약 400조원이 필요하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32조6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0조원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전기요금 인상이 보류되자 한전은 채권 발행을 늘렸다. 우량 채권인 한전채 발행이 많아지면 시중자금을 빨아들여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발행 금리가 높아지고, 중소·중견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힘들어진다. 심할 경우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재발할 수도 있다.

한국갤럽의 3월 마지막 주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며 33.0%로 같게 나타났다. 반면 무당층은 29.0%로 4%포인트 상승했다.[사진=뉴시스]

한국 정치가 끝없이 퇴행하고 있다. 거대 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예상하면서도 단독 입법을 강행한다. 대통령은 집권 1년이 되도록 야당 지도부와 만나지 않았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 없이 지지 세력만 보고 달린다.

미래에 대비하는 정책으로 스스로 잘하려 들지 않고, 상대방 잘못을 부각해 비교우위를 차지하려는 정치판이다. 그런 식으로 여당은 야당 복을, 야당은 여당 복을 누릴지 몰라도 국민은 박복薄福한 게 현실이다. 2024년 총선이나 2027년 대선이나 캐스팅보트는 중도·청년층이 쥐고 있다. 지지층만 보는 혐오의 정치는 결국 외면받는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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