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 TV로 세상과 소통한 예술
울산시립미술관 소장·상영
"작가의 일은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죠." 백남준(1932~2006)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1958년 독일에서 열린 존 케이지 공연이었다. 불협화음이 난무한 이 공연에서 관객들은 화를 내며 자리를 떴지만, 동양에서 온 왜소한 예술가는 자유로움에서 '예술의 미래'를 발견했다.
이후 케이지와 친구가 돼 전위예술가집단 '플럭서스'를 만들고 미국 뉴욕에서 온갖 소동을 일으키며 아방가르드의 전위를 이끌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 부수고, 샬럿 무어먼이 누드로 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 등을 통해 미래로 한발 앞서 도착했다. 그는 "동양인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감정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이자 한국이 낳은 천재 백남준의 사후 17년 만에 그의 생애를 온전히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탄생했다. 어맨다 킴이 연출해 지난 1월 제39회 선댄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의 시사회가 지난달 29일 열렸다. 영화 제작에는 전 구겐하임미술관 이사장 제니퍼 스토크먼과 장미셸 바스키아, 구사마 야요이 등의 영화를 제작한 데이비드 코가 참여했고 내레이션은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이 맡았다. 백남준의 육성과 가족의 증언, 희귀한 작품까지 107분의 영상에 빼곡히 담겼다. 예술적 동료였던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무어먼, 오노 요코, 앨런 긴즈버그 등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영화는 백남준의 생애를 충실하게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한 뒤 음악가의 길을 걷던 그가 케이지를 만나 전위예술가로 변신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그의 눈에 들어온 아방가르드의 도구는 '바보상자' 텔레비전. 세계를 떠돌았던 그는 평생 소통의 문제에 천착했고, TV를 소통의 도구로 만들고 싶어 신디사이저 등을 통해 브라운관 속에 새로운 이미지를 조형해내려 했다. 모든 이가 TV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1인 미디어와 유튜브 시대를 예견한 선지자였다. 청년기에는 돈이 안 되는 비디오아트에 매달려 음식을 살 돈이 없어 건강을 잃을 정도로 고충을 겪는다. 닥치는 대로 후원재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며 생존한 끝에 그는 예술의 변곡점이 될 작품을 만난다. 전 재산을 털어 산 부처상을 TV와 나란히 전시한 'TV 부처'였다. 이후 "로켓처럼 스타가 됐다"고 친구들은 증언한다. 1984년 기념비적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전 세계 생중계를 이끈 험난한 과정이 소개되고, 고국에 금의환향한 이후 한국 미술계를 위해 애쓴 면모도 담겼다.
영화 제목이 탄생한 사연도 재미있다. TV 모니터 12대에 차고 이지러지는 달의 영상을 담은 그의 대표작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Moon is the Oldest TV)'는 3개 제목 후보 중 하나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인터뷰 중 후보작 이름을 종이에 적고 제비뽑기를 권했는데, 이 제목이 우연히 선택됐다. 울산시립미술관 소장품이 된 이 영화는 미술관에서 4월 6~8일 상영됐으며 국내 개봉은 미정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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