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식형펀드서 340억弗 이탈···中·유럽에 260억弗 '머니무브'
美증시 부진에 포트폴리오 다변화
금융권 혼란에 민간 투자도 위축
유럽, 겨울철 에너지 위기 극복
아시아, 조기 피봇도 매력 요소
주요 투자사, 신흥시장 성장 무게
독보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증시에서 올 들어 막대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이 주로 향하는 곳은 유럽과 중국 등의 해외 증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아가 최근의 은행권 혼란이 미국 내 민간 투자에 추가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 시간) 데이터 제공 업체 EPFR의 자료를 인용해 올 들어 미국 주식형 펀드에서 340억 달러가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과 중국의 주식형 펀드에는 각각 100억 달러, 160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지난달 3일부터 31일까지 최근 한 달로 범위를 좁혀도 추세는 같다. 이 기간 미국 주식형 펀드에서 103억 달러가 빠져나갔지만 신흥 시장 주식형 펀드에는 55억 달러가 들어왔다. 이 가운데 중국으로 향한 자금은 40억 달러로 약 72%를 차지했다. 미 증시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빅테크 기업이 주도한 성장에 힘입어 글로벌 자금을 ‘블랙홀’처럼 흡수했던 것과는 반대 흐름이다.
이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던 미국 증시가 급격한 금리 인상 및 경기 침체 우려 등의 영향으로 최근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S&P500 지수’는 지난해 11월 5.38% 오르는 데 그쳐 유럽·동아시아·호주 지역 주가를 추종하는 ‘MSCI EAFE 지수’의 상승률(11.09%)을 밑돌았다. 지난해 12월 S&P500 지수는 5.9% 떨어진 반면 MSCI EAFE 지수는 0.01%만 감소해 낙폭 차이도 컸다. FT는 “‘스톡스유럽600 지수’의 수익률은 최근 4분기 연속으로 S&P500 지수를 앞질렀으며 이는 2008년 이후 최장 기간”이라며 “10년간 이어진 미국 증시의 성장세에 올라탔던 자산운용사들이 투자 다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짚었다.
유럽·아시아 증시의 호조세는 미국 내부 경제 상황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FT는 “유럽 증시에서는 높은 금리의 영향을 덜 받는 금융 서비스 등의 업종 비중이 높다”며 “따뜻한 겨울 덕에 유럽 경제는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에너지 위기에서 잘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경우 호주·한국·인도가 최근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등 통화정책 전환(피벗) 움직임이 비교적 빠르게 나타난 점, 중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높다는 점 등이 투자 유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투자 기관들은 현재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악사인베스트먼트매니저스의 크리스 이고 최고운용책임자(CIO)는 “올해 내내 미국 이외 지역의 주식 수익률이 미국을 웃돌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유럽과 아시아 주식은 저평가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비싼 미국 주식보다 상승 여력이 크다”고 말했다. 블랙록투자연구소(BII), 파인브리지 인베스트먼트, 바클레이스, HSBC은행 등도 최근 유럽과 신흥 시장 증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반면 미국은 최근 금융권 혼란까지 겹치며 민간 투자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관측된다. 스타트업 시장조사 업체인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털(VC)에서 조달한 자금은 370억 달러로 지난해 1분기(825억 달러)의 45%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시장의 압박은 은행 불안 이전부터 심각했다”면서도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가 시장에 또 다른 압박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시중은행의 대출 금액이 3월 15~29일 1050억 달러 가까이 줄어 1973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은행 불안발 신용경색이 이미 시작됐다는 경고가 제기되는 가운데 2025년 이전에 상환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채가 1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모건스탠리의 분석이 나오며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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