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기’가 학폭 대책?…“가해자 불복 소송 늘어날 것”

박고은 2023. 4. 9. 16: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지난 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 국회 교육위 여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 박대출 정책위의장, 이 장관, 장상윤 교육부 차관.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학교폭력 근절 대책으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대입 정시는 물론 취업까지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엄벌주의’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오히려 가해자를 학교 밖으로 떠밀고,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5일 내놓은 학폭 근절 대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낙인 찍기·엄벌주의’다. 당정은 이날 학폭 근절 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학폭 가해 학생의 징계 기록을 대입 정시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학폭 가해 기록 보존기간을 취업 때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가해자에게 졸업 뒤 불이익을 줘 학폭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일변도 대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순신 변호사처럼 가해 학생 학부모의 끝장 소송이 늘어날 수 있고, 소송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자퇴를 통해 ‘학폭 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정책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폭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가해 학생에게 졸업 이후 불이익을 주는 대책이 피해자 회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만약 가해 학생이 자퇴 후 검정고시를 치면 결국 가해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려 했던 목적을 실현할 수 없을뿐더러 가해 학생은 학교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사례가 늘어나면 자퇴한 학생에게 ‘빨간 줄’을 남기기 위한 또 다른 제도를 마련할 것이냐”고 짚었다.

이미 가해 학생 쪽의 ‘불복’은 늘어나는 추세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최근 3년간(2020∼2022학년도) 전국 학교폭력 조치사항 불복절차 현황’ 자료를 보면 가해 학생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처분에 불복해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청구한 건수는 각각 2077건, 575건이었다. 가해 학생의 불복절차 건수는 2020년 587건, 2021년 932건, 2022년 1133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이번 대책이 현실화하면 학폭 관련 사법적 다툼은 훨씬 더 늘어날 게 자명하다. 교육적 해결의 여지는 더 사라지게 만드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학교폭력 관련 소송이 많아지고 길어질수록 피해 학생의 학교생활 복귀도 힘들어진다. 가해 학생 쪽이 불복절차를 진행하면 가해 학생에 내려진 학폭위의 조치가 지연되거나 정지될 수 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경우에도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거치며 1년 가까이 전학을 미뤘고, 피해 학생과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교사가 ‘피해 학생 보호’보다 ‘가해 학생 소송’에 더 집중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면 교사는 ‘절차상 정당성’을 지키는 데 매몰될 수밖에 없다. 절차에 흠이 있으면 교사가 소송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일 낸 입장문에서 “학폭 업무를 담당한 교사는 수사기관, 사법기관과 같은 역할로 인해 수많은 행정 업무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의 민원 처리까지 감당해야 하며,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학생·학부모의 폭언과 폭행, 심지어는 법률 쟁송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근절 대책으로 ‘교육적 해결’과 ‘피해 학생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쪽 동의를 전제로 관계 회복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 교육적 해결을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성준 공동대표는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해 학생에 대한 지도와 피해 학생의 회복이어야 한다. 교육적 해결의 측면에서 관계 회복 프로그램 운영을 체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갈등을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폭 소송을 신속히 처리하는 입법안도 발의됐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이른바 ‘정순신 아들 방지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학교폭력 처분 불복 행정심판 중에도 가해 학생을 분리하고, 행정소송 3심 절차를 7개월 안에 끝내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