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거부권 행사?···‘간호법’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민서영 기자 2023. 4. 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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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계단에서 민트엔젤 민심 대장정 발대식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오는 13일 본회의 표결을 앞둔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의료 직역 단체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파업’을 예고했고, 대한간호협회(간협) 등 간호계는 간호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 시위를 진행 중이다. 정치권에선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간호법을 통과시키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간호계는 간호법을 따로 제정해 간호사의 전문성을 살린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간호사의 근무 환경 등 처우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타직역 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한다. 간호법이 생기면 다른 직역의 이익을 침해하고 보건의료체계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회에 부의된 간호법 제정안 조항을 살펴보면, 양쪽 주장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총 31개 조문으로 이뤄진 제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권리·책무를 규정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시하고 있지만 모두 추상적일뿐더러 새로운 내용도 많지 않다. 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양쪽이 기대 혹은 우려하는 대로 현장에서 당장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는 의미다.

13일 본회의 통과 유력···의료계·정치권 갈등 최고조

간호법 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구두로 약속했던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한간호협회를 찾아 “간호법 제정이라는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각각 대표 발의안을 낼 정도로 여야가 모두 공감대를 모았던 법안이었다. 그러나 최근 여당은 의협 등의 간호법 반대 압력이 커지자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한발 물러났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달 23일 본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안건이 가결된 후 언제든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오는 13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통과가 유력하다. 국회 과반 의석(169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은 본회의 표결만 시작되면 여당이 반대해도 자력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관건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윤 대통령은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첫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우리 정부에서는 거부권 행사가 좀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 윤 대통령, 간호법·의료법도 거부권 행사할 수 있을까
     https://www.khan.co.kr/politics/assembly/article/202304061729001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은 정점에 이르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의협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 8일 총파업을 결의하며 “법안이 통과되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간협 등 간호계는 간호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며 연일 국회 앞에 집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8일 서울 용산구 의협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확대임원 연석회의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법 제정안과 중범죄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공동총파업을 논의하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입법 과정에서 수정·축소된 조항들···기대와 우려대로 될까

간협은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간호 업무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빠른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더 이상 의료기관에서의 ‘간호’에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 대상 방문건강관리, 가정간호,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넓어졌는데, 이러한 지역사회 기반의 간호 업무를 낡은 의료법이 담지 못한다는 취지다. 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타직역 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한다.

본회의에 부의된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권리·책무를 규정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시하고 있지만 모두 추상적이다. 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현장에서 당장 변화가 일어나기 쉽지 않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들이 간호법·면허 박탈법 저지를 위한 전국대표자회의 후 집회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10~12조는 대부분 기존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간호사의 업무 관련해 흩어져있던 조항을 합쳐 옮겨온 것이다. 애초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원문에선 10조의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해 간호사의 ‘단독개원’을 가능하게 하는 독소조항이라며 의사들의 반발이 컸다. 이 조항은 상임위 법안소위 등을 거쳐 의료법과 똑같이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수정됐다.

21조엔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내용이 담겼지만 국가와 지자체, 간호사를 고용하는 기관 등이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처우개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인력 기준이나 의무를 방기한 기관에 대한 처벌·규제 등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있지 않다. 구체적인 인력기준 마련이나 실태조사 등을 할 수 있는 간호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한다는 내용은 제정안의 핵심 취지 중 하나였지만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모두 빠졌다.

지난해 5월12일 대한간호협회 및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소속 간호사들이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간호법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간호법 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도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은 더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간호법을 반대하는 직역 단체들은 실질적인 조항이 없는 제정안이더라도 일단 통과하면 이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독소조항들이 추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간협 측은 제정안 통과 후 시행령 등 하위 법령 제정을 통해 현재 반쪽짜리인 제정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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