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길복순' 전도연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메말라 있던 나를 적셔주는 단비와 같은 작품이에요.”
명실상부 연기파 배우 전도연이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두고 남긴 말이다. 데뷔 33년 만에 첫 액션 연기였고, 첫 타이틀롤이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두고 쓰인 시나리오였다는 건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길복순’(감독 변성현)은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10대 딸 길재영(김시아)의 싱글맘인 길복순(전도연)이 회사와 재계약을 앞두고 죽거나 죽일 수밖에 없는 대결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작품은 공개 3일 만에 1,961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길복순’은 오롯이 전도연을 중심으로 탄생됐다. 전도연의 오랜 팬이었다는 변 감독은 그와 함께 작업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변 감독은 엄마 전도연과 배우 전도연의 간극에 집중했다.
“변성현 감독이 ‘(전도연) 선배님을 놓고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고 해서 반가웠어요. 액션이라는 이야기만 들어서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보고 싶다고 했었죠. 시나리오를 읽을 때 생각보다 액션이 많아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잘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변 감독은 사실적인 모녀 관계를 담기 위해 전도연의 집에 방문하기도 했다. 전도연은 “모녀의 관계성은 반영이 됐고 디테일한 대사는 아니다. 엄마를 ‘입닥’(입 닥치다)하게 만드는 부분들은 비슷하다”며 “지금 한창 사춘기이고 자아가 생겼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행동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킬러들을 키우고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세계관은 영화판을 반영한 것이다. 살인청부 임무를 행하는 것은 촬영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길복순은 “슛 들어가요” “리허설해요” 같은 말을 사용한다. A급 킬러인 길복순이 모든 킬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비슷하다.
“식당 신은 세대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기성세대들이 물러나지 하고 신세대는 답답함을 느끼고 그런 것이요. (‘오래된 칼은 무뎌지고 쓸모가 없어진다’ ‘그 무딘 칼이 더 아프다’는 대사 중) ‘무딘 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설경구와 나에 대한 헌사라고 하더라고요.”
액션 연기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해냈다. 악바리 근성으로 버텼다. ‘여자 액션’이라는 것과 ‘전도연의 액션’이라는 것에 기대치가 낮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럴수록 이 악물고 해냈다.
“후반 작업 더해지면서 특색 있게 잘 나왔어요. 상가 신은 한 달 가까이 찍었거든요. 스폿이 여러 곳이 있고 배우들도 많았어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액션이 조금 편해졌는데, 촬영 중간에 감독님이 ‘선배님 지금 컨디션이면 오프닝신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액션으로 보여줄 건 다 보여줬어요. 감독님도 그 정도로 힘든 작업인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두 번 다시 안 할 거라고요. 두고 보면 알겠죠.”(웃음)
변 감독의 작업 스타일도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배우의 감정을 따라 팔로우하는 것이 통상적이라면, 변 감독은 철저하게 자신이 그린 앵글에 배우들을 가둬 놓고 통제했다. 전도연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에 이어 변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인 배우 설경구에게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해 전해 들었다.
“전 흥미로웠어요. 마냥 편할 거 같지 않지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죠. 막상 해보니까 불편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원하는 앵글 때문에 배우로서 감정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죠. 감독님의 선택이었어요. 딱 여기까지 보여주고 싶은. 콘티도 굉장히 오래 작업한다고 하더라고요. 불편함 속에서 편안함을 찾으려고 하고요. 알게 모르게 새로움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재밌어졌죠.”
새로운 도전은 틀리지 않았다. 이전부터 상업물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던 그는 드라마 ‘일타스캔들’에 이어 ‘길복순’까지 연속 흥행시켰다. 두 작품이 공개되는 시점이 가까워 시청자들은 두 작품을 연관 지어 ‘반찬 잘 만드는 킬러’ ‘남행선의 이중생활’ 같은 재밌는 밈을 만들기도 했다.
“감독님이 여태까지 본인 영화에 이렇게 댓글이 올라온 적이 없는데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관심이니까 재밌게 받아들여 달라고 했어요. ‘수아 엄마, 너 죽었어’ 이런 댓글도 봤는데 재밌던데요.”(웃음)
감사한 나날들이다. 선택한 것들이 틀리지 않았고 그동안 잘 해왔다는 위로 같다. 매번 흥행을 예상하고 연기한 것이 아니듯이, 앞으로도 쭉 지치지 않고 나아갈 생각이다.
“계속 가야 해요. 목마르다고 잠깐 물 한 잔 마신다고 갈증이 가시는 게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그렇지 못해서 답답함은 있었지만, 상업적인 것 때문에 ‘일타스캔들’과 ‘길복순’을 선택한 건 아니었거든요. 이렇게까지 과분한 사랑을 받을지 몰랐어요. 두 작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칸에서 상을 받고 나서 ‘전도연의 정점이다. 뭐가 더 있을까’라는 말이 나올 때 ‘접속’을 캐스팅해 준 대표님이 ‘난 이게 너의 정점이 아니고 네가 궁금해’라고 해줬어요. 얼마 전에도 ‘길복순’ 보고 문자를 주셨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네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라고요. 사람들의 생각에 갇혀 있으면 기회가 없잖아요.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그런 배우이고 싶어요.”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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