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멈춘 기억 시계…세월호 유가족 애끓는 탄식에 '침묵'(종합)

이영주 기자 2023. 4. 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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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세월호 유가족 22명, 참사 현장서 9주기 추모식
"진상규명 더딘 참담한 현실…안전사회 만들 것"
시민들도 "참사 10년 코앞…진실 반드시 밝혀지길"

[진도=뉴시스] 이영주 기자 = 9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주변 세월호 참사 해역을 찾은 유가족들이 참사 자리에 세워진 부표를 향해 국화를 던지고 있다. 2023.04.09. leeyj2578@newsis.com

[진도·목포=뉴시스]이영주 기자 = "또 올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일주일 앞둔 9일 오전 10시 30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현장.

해경 1509 경비함정(1500t급)을 타고 참사 해역에 도착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유가족 22명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그간 참아온 애끓는 간절함을 쏟아냈다.

유가족들의 시선이 머문 곳은 9년 전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자리에 세워진 녹슨 노란색 '세월호 부표'.

선체 헬기착륙장 갑판에 올라 처연한 표정으로 부표를 바라보던 유가족들은 눈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으려고 이따금 하늘로 고개를 치켜 들어올리기도 했다.

"선상 추모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일동 묵념"이라는 말과 함께 추모식이 시작되자, 유가족들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1분여 가까운 시간 동안 묵념한 유가족들은 그간 묻어둔 아픈 기억이 떠오른 듯 흰 면장갑이 끼워진 손을 천천히 강하게 쥐었다.

묵념을 마친 유가족들은 헌화를 위해 선체 난간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가족들의 손에는 저마다 국화꽃이 한 송이씩 쥐어져 있었다.

[진도=뉴시스] 이영주 기자 = 9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주변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2023.04.09. leeyj2578@newsis.com

부표를 바라보며 숨을 고른 유가족들은 하나둘 떨리는 손으로 푸른 바다를 향해 새하얀 국화꽃을 던졌다. 일렁이는 파도 위로 수십여 송이 국화꽃이 눈처럼 내려앉자 유가족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일렁이는 수면을 바라봤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던 유가족들의 눈에는 서서히 눈물이 맺혔다. 노란 외투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던 유가족들은 이내 서로 부둥켜안은 채 흐느꼈다. 흐느낌은 모여서 통곡이 되고 이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돼 맹골수도 한복판에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2014년 4월 16일에 멈춘 기억 시계는 이날도 끝내 흐르지 않았다.

선상추모식을 마치고 경비함정이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에도 유가족들의 시선은 노란 부표에 머물러 있었다. 손에 끼워진 흰 면장갑은 서로의 눈가를 닦아주느라 어느덧 살갗의 색이 보일 정도로 적셔졌다.

부표를 바라보던 한 유가족은 "안 울게. 엄마가 미안해. 미안하고 또 미안해"라며 구슬픈 목소리로 매년 반복되는 영원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목포=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3.04.09. leeyj2578@newsis.com

가족들은 선상 추모식을 마치고 이날 오후 3시께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는 목포신항만을 찾았다.

신항만에 도착한 가족들은 차분한 발걸음으로 세월호가 거치된 부둣가로 향했다. 선체 앞에 마련된 간이 제단으로 다가선 가족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뱃머리 부분에 써진 빛바랜 '세월(SEWOL)' 글자를 바라봤다.

선체가 파손되며 찢어진 글자는 노란 철판으로 엮여져있었다. 선명했던 검정 글자도 수년째 맞아온 비바람에 흐려졌고 녹물에 뒤덮혀 가려졌다.

선체 앞에서 추모식을 가진 유가족들은 묵념한 뒤 차례로 국화꽃을 놓으며 헌화했다. 이후 선체 후미를 시작으로 한 바퀴 돌며 파손된 선체 곳곳을 바라봤다.

김종기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가족들과 시민들이 바라는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9년이란 세월 속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며 "도리어 (참사 초동 조치에 실패한) 해경 지휘부가 무죄라는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가 나온데다 가족들을 모욕·공격한 국가 폭력 행위들이 법원 판결로 확인됐음에도 여태 국가는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참담한 현실에서도 유가족들은 슬퍼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우리가 염원하는 안전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세월호 선체를 보러 목포신항을 찾은 신유경(35·여)씨는 "세월호 참사가 벌써 9년째지만 그 많은 아이들을 구조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 의문"이라며 "일반 시민들도 답답한데 유가족들은 얼마나 애끓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멀리서나마 마음으로 위로하고 응원하겠다"고 했다.

함께 온 최지혜(34·여)씨도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와 여기 있지만 진실은 9년째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오기 전에 반드시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책임자 처벌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목포=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추모식에 참석한 뒤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2023.04.09.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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