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잔인한 4월의 봄" 마르지 않는 세월호 가족의 눈물(종합)
생존 학생·가족도 추모식 동참해 애도
(진도=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하늘에서는 행복하길…"
9년 전 세월호를 집어삼킨 야속한 바다 위로 유가족들의 마르지 않은 눈물이 떨어졌다.
9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 30여명은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일주일여 앞두고 사고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을 열었다.
해경이 준비한 1천500t급 경비함정을 타고 뱃길로만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침몰 지점.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한 바다에 사고 지점을 나타내는 노란 부표가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한 채 파도에 넘실거렸다.
추모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무덤덤해 보이던 가족들은 세월호라고 적힌 노란 부표가 시야에 들어오자 이내 숙연해졌다.
과거와 달리 더는 오열하는 가족은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노란 부표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가족들은 아무런 말 없이 서로에게 기대거나 손을 맞잡고 슬픔을 나눴다.
9년이 지나서야 마음을 추스른 한 유가족은 사고 이후 처음으로 참사 해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유가족을 비롯한 추모식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마음을 국화에 담아 바다에 던지는 것으로 헌화했다.
바다에 떠내려가는 국화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족들의 마음이 하늘까지 가닿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듯 보였다.
이날 사고 해역에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생존 학생과 가족이 함께 찾아왔다.
서로를 보호하듯이 허리를 감싼 채 말없이 사고 해역을 바라봤다.
다시 찾은 사고 현장을 계속 기억하려는 듯 휴대전화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 인터뷰는 극구 사양, 심경을 듣지 못했다.
선상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경비정은 노란 부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경비정은 묵직한 뱃고동을 3차례 울리는 것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가족들에게 잔인한 4월의 봄이 어김없이 다시 왔다"며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모든 것이 엄마 아빠 눈에 또렷이 그려진다"고 회상했다.
이어 "참사 현장은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마음때문에 오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아프고 무서운 기억을 떨쳐버리고 하늘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해경 지휘부 전원이 무죄라는 재판 결과가 나오는 등 진상규명에 역행하는 현실은 자식 잃은 부모에게 추모마저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며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도 엄마, 아빠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추모식에 함께한 민간잠수사 김상우(52)·배상웅(46) 씨는 "더는 슬픈 잠수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사고 해역에 오니 당시의 소리, 냄새, 색깔이 또렷하게 기억나 소름이 돋는다"며 "그때 조금 더 (구조할) 시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회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잠수사들에게도 그때 기억은 큰 고통이고, 잊히지 않는 기억"이라며 "(선상추모식에) 와서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사람들을 대피시킬 시간이 있었는데도 '기다리라'고만 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앞으로 (이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상 추모식을 마친 이들은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는 목포신항으로 이동해 다시 한번 약식으로 추모식을 열었다.
한 유가족은 선체 인근 컨테이너 박스 벽면을 채우고 있는 단원고 학생들의 단체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이내 사진을 쓰다듬는 그의 조심스러운 동작에는 짙은 그리움이 묻어있었다.
세월호 선체 앞에 선 가족들은 추모사 없이 헌화와 묵념을 하는 것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잔뜩 녹이 슨 처참한 모습을 한 세월호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보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다시 되새겼다.
한 추모식 참석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세월호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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