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농식품 스타트업' 제2 마켓컬리 만들자
매일 아침 신선한 식재료를 소비자의 문 앞까지 배송한다는 콘셉트로 시작한 '마켓컬리'는 우리 일상을 바꿨다. 이제 많은 온라인 유통 업체가 새벽 배송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마켓컬리의 성공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사람의 적극적 '투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영화 '건축학 개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배우 이제훈도 당시 스타트업 마켓컬리에 도움을 준 '엔젤 투자자'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마켓컬리의 성공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성한 '농식품 모태펀드'가 마중물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혁신적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람의 삶을 바꾸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잠재성과 미래 가치를 알아보는 투자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매년 수많은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던지지만 대부분이 다음 단계로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장 단계별 투자를 충분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 입장에서 '엔젤투자자'는 말 그대로 천사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스타트업의 성공이 쉽지 않음에도 창업자의 열기는 뜨겁다. 농업 분야도 최근 스타트업창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팜은 요즘 청년에게 '농업은 1차 산업'이라는 편견을 깬 매력적 창업 아이템이고,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은 분야다.
덕분에 컨테이너 형태의 모듈형 스마트팜을 개발한 청년 기업가는 수백억원대의 투자를 기반으로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시 5600만달러, 사우디아라비아 1억달러 등 수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중동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청년들이 물고기 양식을 결합한 수경재배 농법인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방식으로 창업한 스마트팜 혁신기업은 카카오 등의 투자를 유치, 자신들처럼 스마트팜을 창업하려는 청년을 돕는 한편 공유 스마트팜 등 새로운 비즈니스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농업에 스마트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푸드테크(Food-tech)도 촉망받는 분야다. 푸드테크는 기존 식품산업에 바이오,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팅, 로봇 같은 혁신기술을 결합한 신산업 영역이다. 인구 증가, 에너지 비용 상승,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실제로 2017~2020년에 연평균 38%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초에 열린 CES에서 글로벌 5대 기술 트렌드로 푸드테크가 선정됐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도 푸드테크 기업에 최근 160억원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받았다. 국내 벤처투자 분야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조리 로봇이나 서빙 로봇, 탄소 저감에 기여하는 식물성 대체식품, 바쁜 현대인을 위한 밀키트, 온라인 유통플랫폼 등은 최근 국내 투자 보고서에서도 자주 눈에 띄는 용어들이다.
이처럼 농식품 분야 신산업이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는 것은 고무적 일이다. 농업은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식량안보 산업으로,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떠나 필수 산업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농업은 정부 지원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결국 미래 세대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농업이 미래성장산업이 되려면 인력과 기술도 필요하지만 충분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농식품 신산업에 더 많은 창업가가 도전하고, 높은 문턱을 넘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투자 친화적 환경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먼저 그동안 농식품 분야 스타트업 투자에 마중물이 되어 온 농식품 모태펀드는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2010년 농식품 분야의 활발한 투자를 위해 출범한 농식품 모태펀드는 현재까지 총 94개의 자펀드가 결성돼 농식품 스타트업에 1조35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정부 출자 400억원에 민간 투자 유치 등을 더해 약 2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금을 조성하고, 푸드테크 등 신산업을 위한 자펀드를 새롭게 결성해서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과 협력해 스마트 농업, 푸드테크, 그린바이오 등 분야의 혁신기업을 위한 특별 자금도 마련했다. 이들 기업에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약 7000억원대의 대출, 신용보증기금이 1조5000억원 규모의 보증 형태로 정책금융을 제공한다.
금융위원회가 새롭게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 펀드도 농식품 분야 신산업 스타트업이 유심히 봐야 한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혁신산업 펀드, 글로벌 유니콘 벤처 육성을 위한 성장지원 펀드 등 총 3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혁신성장 펀드는 창업 이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기업 가치가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기업이라면 노려볼 만하다.
정부는 농식품 분야 민간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도 과감히 개선한다. 농식품 펀드가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 지분율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투자 방식을 새로 도입하고, 농식품 펀드가 투자목적회사(SPC)를 설립해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자금을 우수기업에 후속 투자할 수 있도록 현행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또 2월부터 농식품부와 유관기관 합동으로 'K-Food+금융투자지원단'을 꾸려서 투자가 필요한 기업에는 금융지원사업 정보, 투자자에게는 관심 분야 우수기업 정보를 각각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도 농식품 금융 분야 영업사원이 되어 정보 비대칭 문제를 완화하고, 실제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할 계획이다.
엔젤투자는 작게 보면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크게 보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농식품 신산업 분야에서 무한한 열정과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을 제2의 마켓컬리로 키워서 국민의 일상을 더 낫도록 바꾸고, 새로운 국부를 창출할 '혜안'(慧眼)의 투자자가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표]농식품 스타트업 투자자금 현황
〈필자〉 정황근 장관은 1960년 충남 천안 출신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에서 국방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20회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농촌정책국장·농업정책국장과 대통령비서실 농림축산식품비서관, 농촌진흥청장 등 농식품부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았다. 평소 농업의 미래 먹거리 관심이 높고, 뛰어난 업무 추진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2016~2017년 농촌진흥청장 재임 기간에 현 정부 농정의 핵심 과제가 된 △가루쌀 △스마트팜 △반려동물 산업화 △밭농업 기계화 △곤충산업화 등 농업 분야 미래성장 동력이 될 톱5 융·복합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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